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수족관 유리를 주먹으로 쳤다. 그것은 물고기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 중에 하나였다. 나는 아이들이(간혹 어른들도 있었다) 왜 벽을 두드리는지 알고 있었다. 물고기가 자기를 알은척하지 않아서였다. 설사 그것이 물고기가 싫어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싫어하는 반응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물고기의 무심함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조안에서 물고기와 마주쳤을 때 난감했던 것도 그들의 시선이었다. 물고기들의 눈은 뭐랄까, 아무리 가까이에서 봐도 도통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생겨먹었다. 그것은 포식자의 눈이나 피식자의 눈이나 마찬가지였다. 포식자의 눈은 사냥을 돕기 위해 주로 정면을 향해 있고, 피식자의 눈은 포식자의 위치를 잘 감지해 도망칠 수 있도록 옆에 붙어있었다. 어쨌든 많은 관람객이 물고기와 소통하고 싶어했고, 그 소통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몰라 대부분 주먹을 사용했다.


- 사랑의 인사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자이다.


나는 '묻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철렁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한 사람이다. ...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신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며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 나는 변명만 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 나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쩔쩔매는 시간에 악기를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 ...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 .... 나는 점점 여기 없는 사람인 척하는 사람, 나는 여기 없는 척하느라 당신이 불러도 대답하지 못했던 사람, 그러나 그때 사실 당신 근처까지 갔던 사람 ...... 하여 나는 이 많은 말들 속에서도 당신이 끝끝내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 영원한 화자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


그날 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내가 상상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후꾸오까를 지나, 보르네오섬을 건너,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가는 아버지. 스핑크스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거쳐, 과다라마산맥을 넘고 있는 아버지. 웃으면서 달리는 아버지. 달리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 그러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그동안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야광 반바지도 입혀드리고, 밑창이 말랑말랑한 운동화도 신겨드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셔츠도 입혀드리고, 달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상상해왔다. 그런데 그중 썬글라스를 씌워드릴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아버지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초라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 그런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은 같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먼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기대감에 부푼,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작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커다란 두 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운다. 그 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뛰실 수 있을 것이다.

 

- 달려라 아비  



그녀가 스위치를 껐을 때, 아버지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고요 속에서 더 많은 잡생각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마치 모든 소리를 동원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듯, 아버지는 그렇게 그녀옆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을 서로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유선을 끊어버린 것은 어쩐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몇년 전 만나던 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을 생각했다. 그녀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그 잡지에 수필을 싣는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았다. 그녀가 문예에 조예가 깊었다기보다는 단지 돈이 필요했고, 또 그녀가 맡을 꼭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성격의 글이었다. 그녀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그 편집장은 온화하고 세련된 자세로 그녀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교양수업 때 썼던 몇개의 작문 페이퍼를 놓고 커피를 한잔 마신 뒤 사무실을 나왔다. 편집장은 그때 그녀에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 라고 물었고 그녀는 어물어물 대답하지 못했다. 편집장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아무개를 좋아한다 말했다. 그후로 그녀는 잡지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때 나눴던 평범한 대화가 다르게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편집장이 '나는 아무개 정도는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너를 퇴짜 놓는대도 그것은 부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그 사람의 온화함에 홀딱 반할 줄만 알았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사람들이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왜 C라고 말한 뒤 상대방이 A라고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펹집장은 아무 의도 없이 질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후로 그녀는 다른 아르바이트 면접장에서 '저 질문의 의도는 뭐지?'만 요리조리 생각하다 면접을 망치고 나온 경험이 있다. 번역, 그것은 그녀가 세상을 불신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배운 옹알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아버지에게 대뜸 C라는 카드를 던져놓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다.


-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리를 잘라줬다. 딱히 기술이 좋은 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이발하는 걸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서툰 솜씨로 끙끙대며, 한 시간이 넘게 내 머리를 자르곤 했다. 덕분에 나는 몇년째  똑같은 모양의 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부자끼리 정답고 얼마나 좋으냐"고 했지만 사실 돈을 아끼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이 군대에서 이발병이었다며 늘 자랑하곤 했다. 나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아버지가 어떻게 이발병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군말없이 아버지에게 머리를 맡겼다. 머리를 깎는 동안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에 껌처럼 붙어 머리를 잘라달라 졸랐다. 아버지는 나를 이상하게 내려다보더니, "자꾸 짜증나게 왜 그러냐"고 했다. 나는 "부자끼리 정답고 얼마나 좋냐"고 했다. 아버지는 잠시 갈등하다가 점퍼를 옷걸이에 건 뒤, "알았다"고 했다.


*


아버지가 구부러진 숟가락을 들어 겸연쩍게 콩나물국을 뜬다. 그녀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아버지는 점퍼 안에 있는 편지 한구절을 조용히 읊는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여기 막걸리 하나 더요."

그러곤, 한번 더 소리내어, 안녕하세요. 아버지는 며칠 전, 그녀의 집앞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


아버지는 고쳐쓴 편지를 다시 꺼내 읽는다. 아버지는 편지를 구긴다. 아버지는 "나는 문장이 안돼!"라고 외치며 거리에서 운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그날.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뭐라구요?"

"그날 이후로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온몸이 가려워지곤 했어요."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SF. 매직리얼리즘. 


글쓰기공작소 <장르와 상상 1부>에서 만난 장르다. 만교샘 아니었으면 이렇게 놀랍고 재미난 이야기를 평생 만나지도 못하고 읽어보지도 못하고 죽을 뻔 했다. SF와 마법현실주의의 매력을 감 잡았다. 


+


이번에 새로 만난 작가는 듀나, 테드 창, 황정은, 마르셀 에메, 조 힐, 셜리 잭슨, 마르케스, 보르헤스, 아이작 아시모프, 어쉴러 르귄, 엘리아스 카네티, 조 왈튼, 존 콜리어, 프란츠 카프카. 공작소 방학동안에 할 수 있는 만큼 이 작가들 작품을 쫙 훑어야지! :-D 


+


어제 이번학기 마지막, 5강 주제는 로봇이다. 알파고 열풍 덕분이다. 원래 장르와 상상 마지막 강의에는 추리물을 다루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을 골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만교샘이 얘기하셨다. 로봇 이야기도 뭐 하나를 고를 수 없을 만큼 다 너무 너무 재밌었다 +_+ 


SF의 힘은 이렇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비추어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 공간이 아닌 다른 행성에 비추어 관계는 무엇인가, 사회는 무엇인가, 제국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다음 학기 <장르와상상 2부>에는 보르헤스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스티븐 킹 소설도, 필립 딕 소설도 읽는다고.


+


이번 학기의 최고를 꼽으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무엇 하나 빼기가 아깝게 나름 나름 훌륭해서다. 그래도 꼽으라면, 듀나, 테드 창, 어쉴러 르귄, 마르케스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


+



이번 학기에 다룬 작품이름이랑 내가 만든 필기 노트. 어찌나 정리를 잘해놨는지, 노트를 들춰보면서 아주 흐뭇흐뭇하다. 



4강 사진이 빠졌다. 4강은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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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쪽지시험을 본다. 한자를 쓰는 시험이다. 병의 증상과 치료법과 약재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쪽지시험을 매주 보고 있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다. 통과하면 "누구, 누구, 누구, 통과." 하고 이름이 불리운다. 통과 못하면 시험 내용을 손으로 열번 써가면 된다.

한글로는 다 외웠지만 한자를 못외워서 통과를 못했을 때, 손으로 열번 써보기도 했다. 한자를 쓰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느긋하게 한자를 뜯어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시험치는 것보다 스릴있고 두근대지는 않았다.

내 방식으로 외워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오늘 예를 들면 간음허에 처방하는 일관전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황, ​삼, ​문동, ​귀신, ​기자, ​연자다. 요걸 앞글자만 따서 "기​숙사는 ​주와 ​당구천국이다." 이렇게 외운다. 이건 기숙사에 살아본 내 경험을 줄세운 거라, 잊을 수가 없겠다 ㅋ

외운 것을 다 써내는 것도 너무 기쁘다.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한글자도 틀리지 않은 건, 아마 나만 알겠지. 시험지를 내는 사람은 30명이나 된다. "노민경 통과." 선생님은 한장에 1초도 걸리지 않고 다음 장으로 넘긴다. 그 짧은 시간에 한글자 한글자 자세하게 볼 리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시험 자체가 한글자 맞나 틀리나를 보기 위한 시험도 아니다. 그러니 온전히 나를 위한 시험이다. 매주, 나를 위해, 내가 공부한 만큼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


시험을 쳐서, 너무너무 좋다. 그닥 많지 않은 분량을 재밌게 외우고, 탈탈 털어 써내고, 단순하게 피드백 받는 과정이 좋아서, 수업시간 시작도 전에 얼른 도착해서 시험볼 자세로 앉아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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