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집 안은 섭씨 33도다. 것도 창문을 다 열어놓은 베란다 쪽이 33도다. 방 안쪽은 더 더운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5층 꼭대기인 우리집은 지금부터 12시까지 점점 더 더워진다.


선풍기는 그냥 평범한 선풍기가 아니다. 선풍기 모양을 하고 있는 사우나 메이커다. 뜨뜻한 바람이 닿은 맨 등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노폐물이 빠져 나가고 고운 피부가 될 수 있는 미용기기였다.


오늘 도착한 자전거를 핸들이랑 페달을 달아서 조립하는데, 땀이 후둑 후둑 떨어진 것이 모여서 발 밑에 물컵 엎지른 것처럼 땀이 고였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얼른 공부짐을 챙겨서 집을 탈출했다. 헉, 집 밖도 숨이 막히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과천에는 24시 카페가 없다. 도서관 열람실도 12시에 닫는다. 집 식을 때까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ㅠㅠ 분노의 검색질. 지하철 한정거장 떨어진 인덕원역 근처에 새벽 3시에 닫는다는 카페가 있다. 어서 가서 한글자 더 읽자. 출발!


정부청사역에서 안양쪽으로 낑낑 헉헉 고개 하나를 넘어, 인덕원역 동편마을 입구를 향해 간다. 선풍기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도 바구니 달린 평범한 여성용 자전거가 아니었다. 오르막길에서는 고가의 클래식 자전거 겸 스피닝 싸이클이다. 평범한 자전거처럼 7단 변속기어가 달려있지만 오르막길에서는 마치 기어 없는 1단 클래식 자전거인 것처럼 잘 나가지 않는다. 덕분에 젓가락같은 나의 허벅지를 말처럼 아름답고 강하게 단련할 수 있다! 좋아!


오르막의 정점을 찍고, 긴 내리막길을 눈썰매 타는 것처럼 내리달린다. '우와아악-- 아하하!' 신이 났다. 얼굴에 대놓고 바람이 불어서 땀이 다 마른다. 자전거 타는 즐거움은 이런 것이었어. 내리달리는 속도가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무서울만큼 빠를 때, 문득 '이따 새벽 3시에 이 길고 가파르고 높은 언덕을 이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어떻게 다시 올라오지;;'  



20분 걸렸다. 카페 안에 들어오니 정신이 든다. 이 큰 카페에 내가 앉을 자리 딱 하나 남아 있고 모든 자리가 차있다. 문닫을 때까지 있어야지 :-D 오늘 밤에는 잘 수 있겠지 +_+ 3일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못잤으니 오늘은 노곤함이 쌓여서 아주 기절하는 것처럼 달콤하게 자면 좋겠다. 내일도 괴산에 가서 내사랑 어린이들이랑 춥도록 물놀이하고 시원하게 자야지. 그리고 돌아와서 낼모레 입추가 지나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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