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쪽지시험을 본다. 한자를 쓰는 시험이다. 병의 증상과 치료법과 약재의 이름을 한자로 쓰는 쪽지시험을 매주 보고 있다.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다. 통과하면 "누구, 누구, 누구, 통과." 하고 이름이 불리운다. 통과 못하면 시험 내용을 손으로 열번 써가면 된다.

한글로는 다 외웠지만 한자를 못외워서 통과를 못했을 때, 손으로 열번 써보기도 했다. 한자를 쓰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느긋하게 한자를 뜯어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시험치는 것보다 스릴있고 두근대지는 않았다.

내 방식으로 외워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오늘 예를 들면 간음허에 처방하는 일관전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황, ​삼, ​문동, ​귀신, ​기자, ​연자다. 요걸 앞글자만 따서 "기​숙사는 ​주와 ​당구천국이다." 이렇게 외운다. 이건 기숙사에 살아본 내 경험을 줄세운 거라, 잊을 수가 없겠다 ㅋ

외운 것을 다 써내는 것도 너무 기쁘다.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한글자도 틀리지 않은 건, 아마 나만 알겠지. 시험지를 내는 사람은 30명이나 된다. "노민경 통과." 선생님은 한장에 1초도 걸리지 않고 다음 장으로 넘긴다. 그 짧은 시간에 한글자 한글자 자세하게 볼 리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시험 자체가 한글자 맞나 틀리나를 보기 위한 시험도 아니다. 그러니 온전히 나를 위한 시험이다. 매주, 나를 위해, 내가 공부한 만큼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


시험을 쳐서, 너무너무 좋다. 그닥 많지 않은 분량을 재밌게 외우고, 탈탈 털어 써내고, 단순하게 피드백 받는 과정이 좋아서, 수업시간 시작도 전에 얼른 도착해서 시험볼 자세로 앉아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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