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마치 목이랑 가슴팍이랑 등이랑 엉덩이에 언제 돋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돋아있는 산딸기 모양 땀띠처럼, 길어있다. 일 마치고 돌아와 씻고, 씻자 마자 다시 땀에 젖어버리는 콘크리트 꼭대기층 집을 탈출해서, 덜 마른 머리를 풀고 밤산책 가던 길에 알았다. 장맛비가 막 쏟아지기 직전의 바람을 맞으면서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살랑, 귀 옆을 지나 어깨 뒤로 넘어가서 사락사락 바람을 타다가, 바람이 멈추면 사르르 귀 어깨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살랑, 목 뒤로 가서 사락사락 날리다가 사르르, 어깨 앞으로. 토끼꼬리만큼 묶이던 댕강머리가 여름 지나면서 이렇게나 길었다.


좋구나. 바람에 머리카락 나는 기분. 파리 세느강 퐁네프 다리를 걷거나, 속초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거북이섬을 보면서 모래를 밟거나, 제주 협재해변에 물이 빠진 바다를 맨발로 걸을 때도, 여름 밤바람을 맞으면 이렇게 머리가 살랑대겠지. 머리카락은 살랑이고, 여기서도 나는 걷는다. 마음도 발걸음도 같이 살랑살랑. 땀띠도 오늘 더위 견디느라 애썼다고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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