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12월이 되어서야 침실에서 나왔는데, 회랑만을 보았는데도 벌써 전쟁이란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우르술라는 그 나이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활력으로 집 안을 다시 활기가 넘치게 꾸며 놓았던 것이다. 

  “내가 누군지 두고 보라구. 이 미친 인간들의 집을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탁 트인 집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르술라가 한 말이었다. 그녀는 벽을 깨끗이 닦아 내고 칠을 새로 했으며 헌 가구를 바꾸고 정원을 다듬고 꽃씨를 뿌리고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여름의 화창한 햇빛이 침실에까지 들어오도록 했다. 그리고 겹치고 겹친 상을 모두 끝내기로 했으며 그녀 자신부터 상복을 벗고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동 피아노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다시 집안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듣자 아마란타는 해질 무렵, 재스민 꽃을 들고 라벤더 향수 냄새를 풍기던 피에트로 크리스피를 생각했다. 시들어 버린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애절해지는 아련한 기억이 피어올랐다. 어느 날 오후에 거실을 정리하던 우르술라가 집을 경비하던 병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경비대의 젊은 대장이 이를 허락했다. 우르술라는 점점 다른 일에도 그들의 도움을 빌곤 했다. 그리고 그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구두와 옷가지를 주기도 하였으며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정부가 가택 경비를 중단하자 병사들 중 한 명은 계속 그녀의 집에 남아 몇 년 동안이나 집안일을 거들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고려원  번역본, chap 9 중에서.




우르술라의 힘. 대단하다, 대단하다, 감탄하면서 읽는다. 나는 집안 일을 이렇게 대한 적이 있던가? 가끔은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머무는 작은 집 정도는 이렇게 한다. 날마다 조금씩 시간을 들인다. 이 미친 인간의 집을 세상에서 가장 쾌적하고 탁 트인 곳으로 만들고 있다. 벌써 전쟁이 끝난 것 같고, 다시 전쟁이 와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디서도 누구와도 지금처럼 지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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