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빨래 널러 나와보니 하늘이 새파랗다. 영락없는 가을하늘이네. 대야산을 지나는 구름도 얼른얼른 흘러간다.

 

 

 

마당 왼쪽편, 동쪽하늘

 

 

 

마당 정면, 남쪽하늘

 

 

 

마당 오른편, 해지는 서쪽 하늘. 벌써 어스름.

어린이집에 애들 데려오면서 우리집 올라가는 언덕길이다.

'저 쪽으로 쭉 가면 바다가 나오겠구나.'

서해. 지는 해. 보러 가고 싶다. 결혼이 무슨 감옥도 아닌데, 바다를 못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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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면어린이집 꼬꼬선생님이 수첩에 써준 가정통신문.

"한결이가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몇글자 써줬더니, 따라서 썼어요."

오호, 따라쓰는 솜씨가 제법이다 :-D

 

 

 

 

 

 

숫자도 한글도 먼저 안가르쳐 주려고 한다. 되도록 늦게 알면 좋겠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더 자세히 보면 좋겠다. 감각을 쓰는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고 더 누리게 하고 싶다.

 

감각을 쓰는 예를 들면, 이렇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찾아올 때는 제목이 몇단어에 몇음절인지 세어서, 책 등 색깔이랑 맞춰서 찾아온다. 예를 들면 "시골쥐와 서울쥐" 그림책을 읽어달라 하고 싶으면, 책꽂이를 훑어가면서 "네글자 + 한칸 띄움 + 세글자" 인 하늘색 책을 찾아온다. 그 밖에도 책 크기라던지 위치라던지 기억하는 방법이 또 있을 것이다. 자기가 아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찾아내서 으쓱거리면서 들고 올 때마다, 한결이의 지혜에 크게 감탄하면서 "대단한데 한결!" 하고 엉덩이를 두들겨준다.

 

배우고 싶어서 몸이 달을 때까지 내버려두었더니 이렇게 꼬꼬선생님한테 다 물어봤구나.

 

+

 

한결이는 틈틈히 그때그때, 필요할 때 쓰면서 익힌다. 숫자를 다 아는구나 하고 놀란건,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거느라고 핸펀 번호를 외워서 전화를 걸었을 때다. 또 포켓몬 카드놀이 할 때, 카드에 써있는 체력지수를 보고 누가 더 센 놈인지 비교하느라고 몇번 물어보다가 어느 순간 백단위로 크고 작은 걸 안다. 이평슈퍼에서 마이쭈 사먹느라고 몇백원 몇백원 물어보다가 돈의 단위를 알고는, 이제는 혼자 동전 들고가서 동생들도 한개씩 사준다. 나한테 덧셈 뺄셈 문제를 내면서 맞춰보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엄마한테 용돈주겠다고 오천원 한장 천원 한장 합해서 육천원을 딱 세서 주기도 했다 :-D

 

한자를 물어보는 이유는, 한자마법 싸움놀이에 필요해서다. 마법천자문 카드에 써있는 한자 이름을 가르쳐주면 바로 써먹는다. 카드를 척 내밀고 한자의 힘을 내뿜으면서 입으로 소리내서 공격한다. 낭송하는 공부의 모습을 한결이한테 본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안다. 대충 뭘 마구 갖다 붙이기도 엄청 잘 갖다 붙이기도 하지만 ㅋ

 

한글은 온유꺼랑 똑같이 생긴 자기 가방을, 이름표 보고 구별하는 걸 보고 '이름은 아는구나' 했다. 그림책 읽을 때 웃음이 팍 터지는 부분에 다다르면 내 입을 막고 자기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여기 이렇게 써있지?" 하면서 대충 글자 수 맞춰서 내용에 맞게 읽는데, 제법 그럴 듯 해서 웃음이 난다. 그림책 그림에 중요한 소품에 써있는 글씨도 잘 안다. 글씨가 아니라 장면을 보는 거겠지만 ㅋ 이미 글씨를 때려맞추는 자신감만큼은 글씨를 다 아는 어린이다.

 

+

 

이젠 한결이가 제발 가르쳐달라고 물어물어 한글을 배워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때도 왔나보다. 어웅, 설렌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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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머리가 어깨까지 온다. 이제야 가능하다. 백미터 달리기 전에 운동화 끈 묶는 것 처럼 비장하게 질끈 묶어가면서 세달을 기다렸다. 때가 됐다. 엊그제 토요일, 마음먹고 자르러 갔다.

"층을 많이 내고요, 숱도 쳐주세요. 샤기컷이요."

층이 층층이져서 길이가 들쭉날쭉하고 한묶음으로 다 묶이지 않고 여기저기 빠져나오는 단정치 못하고 불온한 머리를 기대하면서 안경을 벗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검은건 머리요 살색은 얼굴. 앞이 흐릿하다. 자르는 동안에 "그렇게 말고 이렇게요" 하고 보면서 바로 수정할 수가 없다. 불통에 대한 불안을 버리고 신앙심을 키우는 나의 저질시력. 잘 보이지를 않으니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믿는 수 밖에. 사각사각 자르는 동안 그저 숨을 죽이고 두근두근 기다린다.

"다 됐어요."

앗 드디어. "5초 뒤에 공개합니다"와 같은 말이다. 안경을 끼고 거울을 보니 두둥, 짧고 단정하고 말끔하기 그지없는 단발머리다. 아이 oTL 의사소통 실패! 한번 더 확인했어야 했어!

헝클어진 머리가 되고 싶은 욕망은 물거품이 됐다. 또 세달 다시 기다려야겠다. 야한 생각 많이 하면서 꾹 참고 길러야지. 마음에는 별로 안들지만 짧으니까 찰랑찰랑 가볍고 시원하기는 하다.

...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반전. 세달 전에도 이 미용실에서 같은 상황을 겪고 같은 다짐을 했다. 그 전에도 다른 미용실에서 같은 상황을 겪고 같은 다짐을 하고는 여기로 미용실을 옮긴거였다. 무한 루프에 끌려들었나! 옮겨도 옮겨도 같은 상황이다. 불온하려고 할수록 점점 더 강도높게 단정한 머리로 돌아온다.

세달후에는 꼭 벗어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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