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산책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서쪽하늘에서 아래로 똑바로 떨어지는 엄청 큰 별똥별 봤다. 와- 눈 크게 뜨고 가슴이 두근두근. 얼른 시간을 보니 열두시 22 분. 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감동하는 이 순간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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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많이 울었더니 하루종일 눈이 삼립호빵이다. 마음 알아주는 차선생님이 중간에서 들어주신다고 완전 마음놓고, 이르고, 울고 막...봇물이 터져서 그치지를 못했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내 말이 내 생각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겠다. 왜 이 결혼생활은 이렇게 좁은 세계에 좁은 것 밖에 못보고 좁게 말하는 시시한 사람으로 나를 자꾸 끌어내릴까. 

 

이 시간 공간 관계에 서 있는 나는, 접시바닥에 남은 물에 온몸을 붙이고 아가미를 할딱대는 손톱만한 피라미같다. 물 한방울에 목숨을 걸고 살아보겠다고 할딱댄다. 왜 이렇게 숨통을 붙잡고 간신히 간신히 살고 있을까? 할딱할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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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이 없어도 되는 대신 아주 작게 기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너무너무 사소하고 따뜻한 어떤 것이, 없다. 지금은 없다. 완전히 잃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실이 되는 것 같아서 말하기가 무서웠지만, 말을 해서, 이 상태를 털어보내고, 얼른 다음 상태로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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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을 가져볼까 한다.

 

학교 다니면서도 방학때 계속 학비마련하느라 알바를 했고, 회사를 다니고,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탁발순례를 한달하면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바로 귀농했다. 농사일 하다가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첫째를 낳고, 첫째 키우다가 둘째를 낳고, 첫째 둘째 키우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나 싶은 순간부터 도서관 일을 마음 다해서 하고 여기까지 왔다. 돌아보니 인생의 마디마다 바로 새 시간이 시작되는 바람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천천히 놀아보는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회사 다니면서 3년을 채우고 안식휴가를 받아 2주 쉬었는데, 그 때 혼자 바다를 건너 멀리 가봤다. 터키. 이스탄불. 알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가서 마주치던 모든 낯선 것이 내 삶에 미친듯한 웃음과 설렘과 두려움과 생기를 채워주던 그 시간이 그립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데서 그렇게 혼자 오래 있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가씨 때는 사람을 엄청 좋아해서 늘 같이 노느라 재밌고 바빴다. 혼자 다니는 여행의 맛을 그제서야 안거다. 하지만 그 여행이 시작일 줄 알았지, 처음이자 끝이 될 줄은 몰랐다. 그 후 6개월 후에 귀농할 줄 몰라서다. 혼자있는 시간에 충분히 머무르면서 즐거워할 줄 모르다가, 혼자 있을 수 있던 시간이 봄처럼 가을처럼 금방 지나갔다.

 

결혼하고는 육아와 가사 노동으로 7년을 꽉 채우고도 세달을 지나고 있다. 결혼생활에도 안식년을 가져볼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내년쯤. 집을 떠나서 다른 어딘가에서 일년만 살다 오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래, 생각해보자" 한다. 할딱할딱 하루씩 숨통을 부여잡고 있는 이 생활을 떠나, 혼자 있을 수 있었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그 시간을 다시 살고 나면, 지금 보지 못하는 다른 것이 보일 것 같다.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풍경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길을 걸어보고 다른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지금이 내 인생의 또 다른 마디의 끝과 시작이라면, 이번에야말로 천천히 혼자의 시간에 머무르면서, 마디에서 마디로 넘어가는 시절을 충분하게 겪어내고 싶은 것이다. 다음 마디가 왔을 때 아프지 않기 위해서. 쉬고 싶다. 일년을 뚝 떼어서 쉬고 싶다. 하지만 이 욕망도 이것도 어쩌면, 시성샘 말마따나, 자꾸 달라지는 새로운 환경을 원하는 내 역마살의 발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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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보고, 쉬었다 오면, 나는 숨이 끊어질 듯 할딱대는 피라미에서 떨어지는 별을 경외하면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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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이런 곳. 100메가 파일을 보내는데 예상시간이 한시간이다. 받는 건 좀 낫다. 700메가 파일을 받을 때 한시간 걸린다. 이런 거에 화병이 돋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젊고 아름다우니, 보통은 걸어 놓고 슝 산책을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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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은 비고, 나뭇잎은 노랗고, 일곱살 한결이는 겨울잠바를 입고 9시 반에 어린이집에 걸어간다 :-D 내년 늦가을 아침에는 8시 좀 넘어서 노란 학교버스를 타고 가겠지. 한결이랑 같이 걸어서 어린이집에 갈 시간도 얼마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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