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2015.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제목만 봐도

벗에게 편지가 쓰고 싶다.

 

 

대략 훑어보다가 눈길이 멈추고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구절 :-D

제비바위님,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 매력이 물씬! ㅠ_ㅠ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 아이들에게.

 

"아침밥은 줄 수 있나? 이 때문에 편지하네." - 어떤 벗에게.

 

"넌 모름지기 수양을 잘 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되고, 과거 공부나 하는 째째한 선비가 되지 말았으면 한다." - 작은아이에게.

 

"날씨가 아직 더워 구들막이 찌는 듯하니 애기키우기가 퍽 힘들겠구나. 더군다나 방에 있는 것이 전부 애기가 입에 넣을 물건임에랴. ... 귀봉이는 술주정이 있는데 지금은 심하지 않니? 그는 술만 마시면 엉망이니 아이를 안지 못하게 해라. 웃는다, 웃어." - 큰아이에게.

 

".. 게다가 수많은 이들이 들끓는 바람에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발광할 뻔 했거늘, 알지 못하겠사외다, 그대는 이런 우환을 면했는지? 어떤 사람의 편지를 보내드리며 한번 웃사외다." - 어떤 벗에게.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2015.

레이먼드 카버가 쓴 단행복 미수록 단편, 에세이, 명상록, 초기단편, 서문, 서평 모음집.

으앗, 두근두근두근두근-

 

제목만 봐도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내용도 그럴까.

10월의 끄트머리 밤에, 제대로 딱 마주쳤다.

 

 

어제 밤에 산책하면서 보니,
나비처럼 생긴 오리온자리가 쑥 올라왔다.
별자리 배치가 어느새 바뀌었다.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니 알겠다.
나도 변하고 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도서관 일 생각하고, 입만 열면 도서관 이야기하고, 도서관에 있으면 너무 설레서 종종 밥도 안먹고 밤 늦게까지 정리하던, 푹 잠겨있던 시간을 빠져나오고 있다.

여전히 도서관은 무척 좋아하지만. 언젠가부터 수첩에는 읽고 싶은 책이랑 보고싶은 영화 목록이 가득하고, 머릿속에는 일기쓰려고 틈틈히 떠올리는 문장이 가득하다.
집은 책상이 중심이다. 읽고 있는 책은 오늘 읽을 부분이 펴져있고, 밑줄 그을 색연필이 옆에 놓인 책상.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읽고 쓸 때는, 집이 정말 내가 사는 집 같다. 책상을 정돈하려고 청소를 시작한다. 

도서관 일을 하려고 하루의 일과를 싹 새로 배치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산책하고 공부하려고 밤시간을 중심으로 하루 일과를 짠다.


계절은 바뀌고,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내 마음도, 삶도, 시절을 따라 흘러간다.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뒤로 돌아갈 수도 이대로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솔멩이 도서관과 솔멩이골 사람들과 가족과 앞으로 다가올 운명과 나. 한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이 변화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른 차원의 관계를 맺는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변했다.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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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혹은 끝이다.

..... 다음에 따라오는 생각을 써본다.


잘됐다.
망할 것 있으면 얼른얼른 폭싹폭싹 망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더 망할 건 없나?

망했다, 로 시작해서
촉발. 생성. 새로운 것. 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다 망하고 남은 것이 없어서
그저 나일뿐인 나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로,
한 사람을 깊이 마주하면 좋겠다.
한 순간을 깊이 살아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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