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러 들어간 불꺼진 방에서
한결이랑 온유가 누워서 소근소근 이야기를 한다.
하품을 연신 하면서도 얘기를 멈추질 않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냥꾼을 보고 죽은 시늉하는 곰처럼
냅다 자는 척을 한다.

"아니, 엄마가 안 잔다고 혼내려는 게 아니라,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30분도 넘게 계속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_+"

"포켓몬 얘기야" 하고 온유가 웃음부터 터트리고 말한다.
"그거였구나! 그래도 늦었으니 자자" 하고 문을 닫고 나왔고, 조금 더 얘기하고 잤다.

포켓몬 얘기인 걸 알고 들으니 이런 식이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다 알 수 있는 거지;;

"(한결) 8세대 강철 포켓몬 페어리 타입은?"
"(온유) 5세대 포켓몬인데 2세대에서 태어났어. 뭐게?"
(질문이 허술해서 한결이가 그걸 어떻게 맞추냐고 몇차례 타박함)
"이번엔 네가 내 봐."

포켓몬 이름을 뭐라뭐라 하는데
잘 몰라서 줏어들은 건 여기까지 ㅋ

+

요새 한결이는 이 동네 포켓몬을 열심히 잡으러 다니고
온유는 포켓몬의 진화 과정을 열심히 그린다.


귀여운 개구마루 옆 화살표를 따라가면
진화한 모습인 개굴닌자가! (이름 아는 포켓몬!)
자세히 보면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화살표 방향으로 진화하는 거라고 한다
요 종이를 화살표 방향으로 넘어가보면
역시나 다음 단계로 진화한 포켓몬이!

일주일 설 나들이를 마치고 속초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이고 지고 기차타고 지하철타고 버스 갈아타면서 어린이들이랑 열심히 다녀왔다.

먼길 다녀오는데 어쩜 지치지도 않고 깨발랄한지. 조용히 이동하고 밥먹고 씻고 자기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어제보다 짐승에서 사람쪽으로 손가락 한마디 더 자라난 듯한 의젓함과 재롱을 볼 수 있어서 오늘도 인생의 황금기였다. 너무 재밌고 수월해서 어디든 함께 떠나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애들은 기다리면서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 한편을 봤다. 밥 먹는 그릇을 바꿔달라, 밥 말고 토스트 해달라, 등등 몇 번씩 주문을 바꾸는 금쪽이의 요구에 그래 하고 응하는 금쪽아빠를 보더니 애들이 "엄마가 아빠라면 저런 느낌일 것 같아. 엄마는 착하고 상냥해. 요즘엔 가끔 안 그러지만" 한다. 혼만 안내면 좋은 엄마인 거다 ㅋ

기질이 쉬운 아이가 있고 어려운(까다로운) 아이가 있다는 부분을 보고 한결이가 "엄마 난 쉬운 아이같아" 한다.

"응 우리 어린이들은 둘 다 순둥이야! 한결이는 날 때부터 쭉 점잖고 순둥이였어. 한결이 놀이하느라 바빠서 온유가 뭘 어쩌든 그닥 신경도 쓰지 않았고 티비처럼 둘이 심하게 다투는 상황이 한 번도 없었어.

온유는 좀 지랄맞 (까지 말했는데 달려와서 씨름으로 넘어트리려고 함)... 아니 자기 주장이 명확한 순둥이. (힘 풀고 감)

남자애들이라 기운이 넘쳐서 몸으로 덤비는 걸 엄마가 감당하기가 벅찼을 뿐이지. 잘 먹고, 울다 돌아서면 바로 웃고, 머리 대고 누우면 아침까지 안 깨고 푹 자고, 아무데나 던져놓아도 친구를 만들고 새 놀이를 만들고 잘 놀아주어 고마웠어."

그리고 요새 점심먹고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여섯시에 문 닫을 때까지 다섯 시간 내리 책을(=만화책을) 즐겁게 읽어주는 것도 고맙고. 이 얘기까지 하면 내일은 안 간다고 배를 까뒤집고 누울 것 같아서 생략했다.

생각해보니 이제는 온유가 지하철 바닥에도 대합실 바닥에도 눕지 않네. 맨질맨질 반짝반짝한 도시의 바닥을 보면 두근대면서 한번씩 누워보던 온유가 언제부터 안 그러게 되었지. 모르는 사이에 수월해졌다.

오은영 선생님이 계속 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를 주시네.
오선생님 감사합니다.

내일도 재밌게 잘 놀자 :-D


책읽는 형아 뒤통수 냅다 내려치기
조용했다 1
조용했다 2
조용했다 3 (잠든 형아 올라타기)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 끝에다 금속징도 박아서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주셨다.
돌리고 때려보니 회초리채가 맵지 않아서 일단 보류 ㅠ

우리 아빠는 손주들한테 칼도 방패도 썰매도 팽이도 만들어주는 척척박사 할아버지다 :-D

늠름장군의 칼과 방패 (2019년 2월)
https://coolcitygirl.tistory.com/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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