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엄마는 저쪽으로 가고, 우리 친구들은 이쪽으로 갔잖아. 나도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왜 같이 안갔어?"

온유가 잠자리에서 소근소근, 엄마랑 헤어지던 순간을 이야기하다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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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간 송면어린이집 긴나들이.

일정을 다 마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다. 온유는 누군가가 뜬금없이 사이다 이야기를 꺼낸 후부터 갑자기 사이다가 너무너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선생님도 다른 엄마아빠들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온유가 용기를 내서 직접 아줌마한테 가서 "사이다 팔아요?" 하고 물어봤지만 "안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와서 엄마 귀에 소근소근 "엄마! 냉장고에 사이다가 있어. 내가 봤어." 눈 앞에 냉장고에도 있는데! 그다음부터 온유는 엄마 등에 쿵쿵 박치기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했고 ㅋ 엄마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딱히 호되게 야단치지 않고 먹던 밥이나 마저 먹고 ㅋ 그래서 엄마는 마침내 "엄마가 있어서 온유가 이렇게 어리광 부린다. 이러면 선생님들이 힘들다. 얼른 가라~" 하고 서연엄마한테 한소리 들었다 ㅋ 안그래도 따로 가려고 했는데, 사이다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신발신고 밖에 나와서 헤어지던 순간. 온유는 아빠한테 안겨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혀가면서 엉엉, 무척이나 서럽게 울었다. 온유는 "그 때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어" 하고 말하면서, 그 때의 감정이 떠올라서 울먹울먹할만큼 컸다. 돌아서면 까먹는 애기인줄 알았더니, 기억을 한다.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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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고 나서는 차를 타자마자 기절하듯이 캑 잠들었다고 한다. 이뇨속 잠투정인 줄 진작 알아봤다. 밥 먹을 때부터 눈이 반쯤 감겨있더니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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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순간의 상실감이 있고, 헤어지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상실감이 있다면, 헤어지는 순간에만 잠시 울고 잘 지내주면 좋겠다. 잠시 울먹하다가도, 재미난 일이 너무 많아서 또 장난치고 웃고, 앞으로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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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이 보낸 질문.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에게 (예를 들면 일자리가 없어서 생존이 불안한) 마음 다스리기는 어떤 효과를 주는 걸까. 효과가 있긴 한가? 안좋은 사정이 바뀌지 않는 한, 마음 다스리기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 마음을 다스려서 현실의 사정을 바꿔보려는 마음의 힘을 내자는 건가?


이 질문을 마침 김정욱 신부님을 만나러 가고 있는 길에 받았다. 신부님을 만나서 반가워서 폴짝폴짝 뛰고 나서 ^^ 차 마시면서 여쭤보았다.

굶어죽을 수 있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해두고 자기한테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 왜냐면 굶어 죽지 않는, 안전한 무언가를 보상받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내 마음이 다스려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 그치? 없었던 직장이 생기고,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어디서 떨어지고, 누가 집을 거저로 주고.. 그런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내 마음이 바뀌어도.

근데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늘 앞에 있다고 생각해야 돼. 그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좀 편한 걸 했다면은 먹고 사는 일이 쉬워질꺼다" 이런 얘기는 맞지 않는다는 거지. 어떤 일을 하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렇게 봐야지. 예를 들어 계약직으로 도서관 사서를 한다고 해도 그 일이 몇 년을 보장하겠어. 그니까 인생은, "먹고 사는 문제를 완성하고 나서 뭔가를 하겠다"고 할 문제가 아니야.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사는 일이 앞에 있으니까,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세부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고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니까 내가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간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더 쉬운 남산을 올라간다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럼 어느 산을 갈거냐? 높든 낮든 상관 없지, 내가 그 산을 정하는데. 그 산을 가는 길에 의미들이 생기는 거지.

그리고 신부한테 먹고 사는 얘기를 물어보지 말라고 해. 신부는 형편이 너무 좋아서..(웃음)



먹고 사는 일은 늘 앞에 있으니 굶어 죽을 각오하고, 내게 의미있는 일을 하는 길 위에 의미가 생긴다. 그렇다. 맞다 맞다. 용기가 솟는다.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벗이 있어서 고맙다. 배우고 나서 끝이 아니라, 움직임을 바꾸어서 현장을 나아지게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이렇게 대답해주는 길 위의 신부님이 있어서 고맙다. 길 위에 나서는 자체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걸, 먹고 살 걱정에 빠져서 잊을 뻔 했다.

뜻밖의 여정에서 뜻밖의 힘을 얻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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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를 아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슬픔이 몰려올 땐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하기만 하다. 땅을 뚫고 들어가고만 싶을 뿐 한치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럴 때 내게 두 눈이 있어 글자를 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 찬찬히 읽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내 눈이 다섯 가지 색깔만 구분할 뿐 글자에는 캄캄했다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을지. _ [이목구심서] 2, [청장관전서] 48권

 

- 낭송 18세기 소품문, 북드라망, 2015

 

 

지난 12월에 청주 해인네 학술제에 한결이 데리고 놀러갔다. 한결이는 역시나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바닥에 누웠다 기었다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지만, 그래도 가자고는 안하고 거기서 만난 형아 누나들이랑 금세 친해져서 놀았다.

 

그러다 해인네 초등학생들의 낭송시간. 주위에 한결이처럼 행사를 못견디겠는 아이들이 내는 소리가 갑자기 안들리고 이 요 구절을 재잘재잘 낭송하는 소리만 들어오는데 헉,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키보드를 토닥이면서 헉, 글썽이다가, 몇장 넘기면서 읽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덕무 선생님, 저한테도 통하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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