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이 보낸 질문.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에게 (예를 들면 일자리가 없어서 생존이 불안한) 마음 다스리기는 어떤 효과를 주는 걸까. 효과가 있긴 한가? 안좋은 사정이 바뀌지 않는 한, 마음 다스리기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 마음을 다스려서 현실의 사정을 바꿔보려는 마음의 힘을 내자는 건가?


이 질문을 마침 김정욱 신부님을 만나러 가고 있는 길에 받았다. 신부님을 만나서 반가워서 폴짝폴짝 뛰고 나서 ^^ 차 마시면서 여쭤보았다.

굶어죽을 수 있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해두고 자기한테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 왜냐면 굶어 죽지 않는, 안전한 무언가를 보상받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내 마음이 다스려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 그치? 없었던 직장이 생기고,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어디서 떨어지고, 누가 집을 거저로 주고.. 그런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내 마음이 바뀌어도.

근데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늘 앞에 있다고 생각해야 돼. 그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좀 편한 걸 했다면은 먹고 사는 일이 쉬워질꺼다" 이런 얘기는 맞지 않는다는 거지. 어떤 일을 하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이렇게 봐야지. 예를 들어 계약직으로 도서관 사서를 한다고 해도 그 일이 몇 년을 보장하겠어. 그니까 인생은, "먹고 사는 문제를 완성하고 나서 뭔가를 하겠다"고 할 문제가 아니야.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사는 일이 앞에 있으니까,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세부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고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니까 내가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간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더 쉬운 남산을 올라간다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럼 어느 산을 갈거냐? 높든 낮든 상관 없지, 내가 그 산을 정하는데. 그 산을 가는 길에 의미들이 생기는 거지.

그리고 신부한테 먹고 사는 얘기를 물어보지 말라고 해. 신부는 형편이 너무 좋아서..(웃음)



먹고 사는 일은 늘 앞에 있으니 굶어 죽을 각오하고, 내게 의미있는 일을 하는 길 위에 의미가 생긴다. 그렇다. 맞다 맞다. 용기가 솟는다.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벗이 있어서 고맙다. 배우고 나서 끝이 아니라, 움직임을 바꾸어서 현장을 나아지게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이렇게 대답해주는 길 위의 신부님이 있어서 고맙다. 길 위에 나서는 자체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걸, 먹고 살 걱정에 빠져서 잊을 뻔 했다.

뜻밖의 여정에서 뜻밖의 힘을 얻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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