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님네 집에 놀러갔다. 전에 못보던 것이 눈에 띄었다. 양지바른 곳에 자갈을 깔고 옹기종기 항아리를 올린 장독대와 마당의 수돗가. 저녁햇살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한참을 아무말 하지 못했다. 항아리 안에서는 해마다 담은 된장, 간장, 매실 효소랑 오미자 효소가 식구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느긋하게 시절을 보내겠다. 그리고 할일을 다 마친 언니님 자신을 위해 마련한 글 쓰는 작은 책상을 보고도 감탄감탄했다.

조금 더 참았다면, 고비라고 여기고 한번 더 넘겼다면, 사부작 사부작 집 안팎을 가꾸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남편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었을까? 저렇게 예쁜 장독대를 가꿀 수 있었을까?

널찍한 장독대와 늘어선 항아리와 뭐든지 씻고 다듬을 수 있을 것 같은 수돗가에서 만난 것은, 지금 여기와 오지 않은 내일까지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시골의 삶이겠다. 가족과 함께인 것이 당연한 삶이겠다. 어떤 종류의 용기와 의지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고 싶었고, 흙 가까이에 돌아오고 싶었고, 아기를 낳고 싶었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고, 정말로 그렇게 살았다. 다만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다. 마당의 이 풍경은 내가 더 가보지 않은, 더 가보지 못할 삶이겠다. 나는 갈 수 없겠다. 이 풍경을 가꾸어내기까지 언니님도 많이 참고 많이 견디고 많은 용기를 냈어야 했겠지. 평화로운 풍경 뒤에 수많은 평화롭지 않은 나날이 필요했겠지. 나는 그만 참고 그만 견디기를 선택하고, 내 삶에도 한 장면이 될 수 있었던 이 풍경을 잃는다.

대신 마지막 날까지, 언니님처럼 가족과 함께인 것이 당연한 마음으로, 늘 지내온 하루 중에 하루인 것 같은 오늘을 살 수 있다. 아직 3주 하고도 이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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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시죠? 
공부들 열심히 하고 있지요?  

 

...........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가려울 때만 감아요

 

............

 

방학동안 공부 많이들 하세요.
글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니까 스스로 열심히 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지만 
살아보니 공부가
복이에요.
복음

 

공부 많이 하세요.

 

- 만교샘 [안부], 다음카페 글쓰기 공작소 열화, 2016.1.9

 

 

방학 중에 카페에 올라온 만교샘의 글.

열일곱줄 중에 다섯줄에 "공부"가 들어있다.

시작을 공부 인사로, 중간은 만교샘 공부, 마지막은 공부 당부다.

엄청 만교샘스러운 안부글이다 :-)

너무 좋아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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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비밀얘기 해줄게. (소근소근)
아빠가 서연이네랑 밥먹을 때 술 서른잔 마셨다!
그 다음에 농장에 가서 술 무한잔이나 마셨어.
다 합해서 서른 무한잔이야!
너무 많이 마셔서 집에도 못오고
온유랑 나랑 아빠랑 농장에서 잔거야."

서른 하고도 무한잔이면 서른 무한잔.
덧셈 좀 하는 이한결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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