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 솔뫼 가공공장에서는 메주를 만든다. 솔뫼농장 회원이면 의무로 몇번 이상 참여해야 한다. 나도 열흘 일하는데, 오늘이 처음 일한 날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일할 수 있는 날짜 일할 수 없는 날짜를 다른 사람이랑 이리저리 바꿀 때는 부탁하는 것이 어려워서 '괜히 일 한다고 했나' 했는데, '힘 닿는 대로 날마다 일하고 싶다'로 마음이 바뀌었다.
마음이 어쩌다 바뀌었을까.
+
출근해서 맨 처음 시작한 일은 이미 만들어진 메주 뒤집기다. 황토방에 줄지어 세워져 띄워지고 있는, 이틀 지난 메주를 뒤집는 일이다. 유기농 백태를 무쇠솥에 삶아서 갈아서 네모로 만든 메주를 건조기에다 하루를 말리고, 황토방에 유기농 볏짚을 푹신푹신하게 깔고 따뜻하게 난방을 해서 건조기에서 나온 겉이 마른 메주를 쫙 줄세워두는데, 이 메주를 뒤집어 주는 거다. 처음에는 180도 뒤집고, 이틀 뒤에 90도, 다시 이틀 뒤에 180도를 뒤집으면, 4면이 골고루 뜬다. 뒤집으려고 딱 들어올렸는데 진득하고 하얗게 잘 뜬 바닥이 보인다. 순간, 뭔가 굉장한 대자연의 섭리와 마주친 숭고한 기분이 들었다 +_+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만들어 내고 있는 세계다. 미생물은 굉장한 속도로 삶은 콩 덩어리를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에서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뻗어 메주를 뒤집는데, 한번 뒤집을 때마다 내 몸이 참 유연하고 날렵한 상태인 것이 느껴져서 자뻑모드 ㅋ 나를 자뻑하게 하는 메주뒤집기 ㅋ
여러사람이랑 같이 일하면서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도 좋았다. 팀짜서 발야구 경기 하는데 공격 수비가 균형이 잘 맞을 때 처럼, 나는 한가지만 맡았지만 그저 마음이 놓인달까!
작업이 몸에 익으면서 여유가 생겨서, 메주 모양을 잡는 일이, 일이 아니라 도자기 만드려고 점토를 주무르는 놀이 같아졌다. 따끈따끈하고 매끈매끈한 메주 덩어리는 같은 모양이지만 하나도 똑같지 않다. 한덩이 한덩이 만들 때마다 새롭다. 뭔가를 손으로 빚어 계속 만들어내고 완성하고, 만들어내고 완성하는 기분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몸쓰고 돌아오는 성취감은 머리쓰고 돌아오는 성취감과는 또 다른 쾌감이 있다. 아이구 기분 좋아. 선영언니가 만들어 준 새참이랑 밥을 먹은 것도 호사!
+
선영언니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 배워두려고 적어놓는다. 오전 새참은 땅콩쨈이랑 딸기쨈을 바른 베이글이랑 모닝빵이랑 콩 삶는 무쇠솥에 올려서 따끈따끈하게 데운 두유다. 한살림 빵이 이렇게 맛있었나? 놀랐다. 두가지 쨈을 2층으로 겹쳐서 바른 언니의 센스가 빛이 났다.
점심은 흑미밥, 농장 김장김치, 갓김치, 배추전, 대파가 팍팍 들어간 김치찜, 고추장 감자찌개. 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두번 퍼먹었다. 선영언니의 비법, 배추를 소금에 살짝 절여서 부치는 배추전도 맛있다 ㅠㅠ 바삭바삭 하면서 고소하고 간간하고 ㅠㅠ
오후 새참은 새알심이 동동 들어간 팥죽이다. 아니, 사람이, 같은 팥으로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너무너무 맛있어서 반쯤 절망, 반쯤 희망.
+
일하니까 몸쓰는 쾌감에, 맛있는거 잘 먹고,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고, 두루두루 좋다. 비록 집에 오니까 계속 주저앉아 있고 싶어서 애들은 남편이 데리고 나가서 저녁을 해결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