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글쓰기공작소 언어탐색반 과제
노민경

 

 

수업시간 안에 다룰 과제가 많아서 시간이 부족했다. 보강 시간에도 빠듯해서, 요거는 평 못받고 넘어갔다. 만교쌤이 문제 있는 생각문장들을 다 끄집어 주시는 건, 아주 겁나기도 하면서 엄청나게 배우는 시간이다. 다음 수업시간에 잘써야지 휴-

 


1. 좋아하는 작품의 좋아하는 부분 :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김애란

 

용대는 제가 하는 말을 곰곰 되씹었다. ‘워’는 나, ‘더’는 무엇무엇의, ‘쭈어웨이’와 ‘짜이’는 각각 자리와 어디라는 뜻. 이어 붙이면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 다음, 그 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용대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투박한 한국어 문장으로 설명해줬다. 용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내로 여겨지곤 했다. ‘이 여자, 언제나 내겐 좀 과분하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정성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이해 못 할 게 없다는, 소통에 관한 한 순진할 정도의 믿음이 있던 여자. 일도 참 잘했지만 공부를 했다면 더 좋았을 젊은 아내. 처음, 손바닥에 땀을 닦고 악수를 건네자, 세상에서 제일 작은 부족의 인사법을 존중하듯, 웃으며 따라 한 북쪽 여자. 웃을 땐 하얗게 웃고 죽을 땐 까맣게 죽어간 여자. ‘짜이날’을 발음하자, 그 여자가 떠올랐다. 용대는 아내가 뭔가 설명하고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 좋았다. 그 대상이 자기일 경우에는 더더욱. 언제나 말[言]이 고파 크게 벌어졌던 눈. 지구 축처럼 – 사람을 향해 15도쯤 기울어져 있던 마음. 그 경사에 스스로 미끄러지면서도, 아프면 그저 ‘아야’ 하고 말던 성격. 그녀는 용대를 진지하게 대해준 사람이었다.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유 :

어려서부터 주변의 홀대를 받은 용대다. 가족의 수치, 가계의 바보, 가문의 왕따. 어느 집안에나 꼭 한명씩은 존재하는 천덕꾸러기가 용대다. 아무일 없어도 손에 늘 땀이 흐르고 머리도 벗겨졌다. 어머니가 함께 사는 보금자리인 시골집과 텃밭을 보증을 잘못서서 날리고, 대낮에 술에 취해서 논두렁에 고꾸라지고, 못생긴 다방아가씨를 색시라고 데려왔는데 오토바이 사고 보험금을 아가씨가 가지고 사라지는 등등, 하도 사고를 쳐서 식구들 뿐 아니라 그 자신마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형편없는 인간이 용대다. 그러다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고 택시기사 일을 하면서 기사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성 명화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처음으로 용대의 인생에서 용대를 진지하게 대해준 사람이었다. 구청에서 도장만 찍고 살림을 차리고, 열에 달뜬 청춘처럼 새삼스럽게 늙은 추방자들처럼 절박하게 반지하에서 살을 섞는 행복한 기간은, 명화가 몇 달 뒤 위암으로 금방 죽으면서 어이없이 짧게 끝난다. 명화가 죽고난 후에 용대는 명화가 정말 자기를 사랑했는지 궁금해하고, 명화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용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준다고 녹음한 테이프를 발견한다. 테이프를 택시 운전할 때 틀어놓고 듣고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명화의 사랑을 제대로 마주한다.


이 장면은 테이프를 듣고 “짜이날”하고 따라했을 때,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말을 처음 배우던 처음 순간과 함께 자신을 대하던 명화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명화가 곁에 없고 난 후에 돌아보는 그 순간의 말은, 자리를 찾을 때 쓰는 일상 중국어 회화 이상의 의미가 새로 더해진다. 일, 가족, 고향, 아내, 어느 하나 안정된 것 없고, 누구도 믿지도 못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기 자리가 어딘지 몰라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저 방황하고 있는 용대에게, 시간을 거슬러 명화가 건네는 사랑의 말이 도착한다. 명화의 용대를 향해 15도 기울어져있던, 용대를 따라한 악수와 하얀 웃음과 집중하느라 커진 눈과 마음 다해 이야기를 전하려 했던 그 모든 움직임 속에 들어있던 마음도 한 목소리가 되어 이야기한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말라고. 지금 여기 있다고. 지금 여기의 삶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라고. 당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만들어가라고. 여기가 맞는지 계속 질문해보는 용기를 내라고.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사랑이, 모두에게 ‘그러면 그렇지’인 용대가 과분한 말을 들어도 되고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마법을 걸어 준다.

 

명화가 가르쳐 준 말을 되풀이 해보면서 말을 넘어 존재하고 있는 사랑을 발견한 용대는, 자신이 점점 나아질 거라는 것도 알게 된다. 용대의 자리가 어디인지, 도착은 할 수 있는 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어도, 질문을 던지는 삶의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새로운 삶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 자리를 찾아서 방황하는 나도 이들의 사랑을 만나서, 발디딘 곳이 내 자리가 맞는지, 내 자리는 어디인지, 질문을 던지는 용기를 내본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테이트가 덜커덕 소리를 내며 저절로 뒷면으로 넘어간다. 짧은 사이. 명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용대는 조그맣게 “리 쩌리 위안 마?”라고 중얼거린 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겨울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약속처럼, 나뭇가지에 끝끝내 매달려 있는 은행 몇 알이 방금 지나간 택시를 굽어보며, 떨어지지도 썩지도 못한 채 몸을 떨고 있다.

밴드 러버부츠가 2014년에 초대받아 공연하러 갔던, 경북 상주시 함창읍 카페 버스정류장, 박계해 선생님 이야기. 2008년에 귀농운동본부 귀농학교에서 강의하실 때 처음 만나고, 작년에 공연하러 가서 두번째 만났고, 책으로 세번째 만난다. 여전히 꾸준히 내 삶을 내가 꽃피우면서 사는 분인 듯. 이 분의 삶을 보면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도 슬쩍 짐작해 본다. 보리 언니는 며칠 전에 다시 가서 공연하고 돌아와서, "술술 읽힌다. 읽어봐."하면서 이 책을 빌려줬다. 다 읽고 나니 보리언니랑 얘기하고 싶다. 언니랑 조용히 차 한잔 마시러 다시 가봐야겠다 :-D

 

 

+

 

이런 촌구석에 카페를 열 생각을 하다니, 나는 과연 대단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p.21

 

 

어떤 잡지 인터뷰어가 꿈이 뭐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내 대답은 '꿈이 없다'였다. 분수에 맞지 않거나 이룰 수 없는 꿈은 꾸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건 언제나 할 수 있었다고.

그는 이 인터뷰 내용에 '살아서 사라지는 꿈'이라는 멋진 제목을 달았다. 어쩌면 -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막다른 선택'이야말로 '현실도피'라는 꿈을 당장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 p.176

 

 

나는 그 때도 같은 문답을 자주 들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행복해 보여서요" 라는. 그러니 나는 남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사람인 모양이다. 실상은 처절한데도, 초라한데도. (...) 따지고 보면 형태만 다를 뿐 처절하지 않은, 초라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처절함과 초라함은 행복하냐, 안 하냐에 필수적인 변수는 아니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모범답안은 이렇다. 그건 "이 순간, 행복하세요?"라고 해야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스스로를 향한 것이며 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도 그 자신뿐이라고. - p.118

 

 

어떤 사람이 자기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거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p.223

 

 

행동은 절망의 해독제다. - 존 바에즈

- p.199

 

 

하나씩 풀어야겠다.

덩어리라고 여기고 손도 못대고 있는 것일수록

가장 끄트머리에 쉽게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너무 빤히 쉽게 잡을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풀려는 시도를 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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