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학당 세미나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목련꽃망울이 어느새 차올라서 봉긋봉긋하다. 달도 차서 둥글다. 술 한모금 안마시고도 풍류다. 꽃 피기 시작하면 장관이겠다. 30년 넘은 아파트답게 나무마다 5층만한 키에 아름드리에 거대한 바오밥나무처럼 가지가 뻗어있고 꽃망울이 함박눈 내린 것처럼 달려있다. 지금 이대로도 너무 아름답다. 나도 30년 넘었는데, 활짝 꽃피고 싶어라-.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세수하고 스킨로션 정성스럽게 발라주면서, 거울 보고 혼잣말 세번 해줘야겠다. 

아이들이랑 아침에 유모차끌고 자전거타고 어린이집에 가면서, 밤사이에 떨어진 커다랗고 깨끗한 꽃송이를 보물처럼 주웠던, 솔멩이골 송면중학교 건너편 길가 목련도 이렇게 필 준비를 하고 있을까. 다음주에 내려가면 활짝 피어있으려나.



핸펀 사진이 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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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읽기수업 숙제했다. 카드에 구절 써서 암송하기!

​핸드메이드 암송과제 단어장. 선이 없는 노트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큼지막하면서 선이 없는 건 돌아다녀봐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북아트로 다이어리 만드려고 8년전에 마련해둔 A5 크라프트 속지랑 카드를 찾아서, 펀치로 구멍뚫어서 만들었다. 왜 8년 전이냐면 한결이 낳기 전에 태교하려고 사둔거라서 그렇다. 그때부터 내내 바빴고, 8년이 지나고 이 종이는 비로소 빛을 본다. 마치 지금 이때 쓰려고 마련해둔 것 처럼, 비장하게 만들었다. 표지 한자도 연습한번 해보고 그렸다. 세상에, 한자를 다 그리다니!

 

논어 1장 학이편 1-15 구절이다.
하도 듣고 싶던 수업이고 하고 싶던 숙제라, 한글자 한글자 쓰면서 너무 행복하다.

공자와 자공의 대화. 자공은 애제자 안회를 의식하면서 물어보는 것이었을까.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괜찮은거죠?" 에서 "괜찮다"로 그치지 않고, 공자님은 한걸음 더 나가서 가난하면서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금 처지가 어떻더라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한걸음 더 나가 보기. 나도 오늘 하루, 내가 처한 상황에서 마음 내서 하나 더 나가볼테다.

알고 있던 다른 텍스트를 가져와서 맥락을 해석해보는 시도에 스승님이 칭찬을 퍼붓는다. 앞말을 듣고 반응하는 말 속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고 서로 배운다. 풍성해진다. 좋은 대화. 이것도 참 멋지다. 이 자공이 나중에도 이렇게 주고받는 질문 속에서 스승님이 "너는 호련이다." 하고 불러주는 그 자공이다. 1편에서부터 벌써 호련같다. 나도 스승님이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다. 총기가 자공만큼은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스승님이 감동할 만한 공부를 해야겠다! 다만 요새 스승님이 한둘이 아닌 것이 함정 :-D

 

요고는 숙제분량 읽으면서 내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랑 이유랑 적어가는 단어장.

 


시골이라서 세계가 좁은 사람이 된다는 건, 더 생각해보면 꼭 맞지는 않는 인과관계인 것 같다. 대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미안해지는 말이다. 크게 흐르는 계절 속에서 겸손하면서도 여유롭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날마다 소소하고 작게 변하는 시골의 하루처럼 날마다 새로운 영감으로 차올라서 가슴벅찬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나?


날마다 먹는 밥이 내가 되는 것처럼, 날마다 하는 생각과 말이 자기의 삶의 시간을 채워나가고 그대로 자기가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면, 더 어렵고 나은 방향으로 자기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40이 넘고 50이 넘어도 도시에 있어도 시골에 있어도 마찬가지겠다. '그런 쓸데없고 뻔한 말을 지껄이다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서로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했어.' 하고, 자다가도 부끄러워서 소스라치게 놀랄, "(만교샘 표현에 따르면) 내 세계가 아닌 바깥 세계의 말"을 하지 않도록, 바짝 긴장해야겠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자기가 아깝지 않나? 자기 삶이 아깝지 않나? 어떻게 살아왔길래, 어떻게 살고 있길래, 자기를 학대하듯이, 그런 말과 생각으로 관계를 채우지? 그 관계에서도 뭔가 새롭고 즐거운게 만들어질까? 나아질 것이 없는 말과 관계를 계속하고 싶을까?"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와서, 잊지 않으려고 쓴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문득 나한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 나올까봐,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뻔할까봐, 너무 무섭다. 저 질문들이 그대로 내게도 돌아온다. 그리고, 마음이 편하지 않고, 아깝고, 안타깝다. '어찌보면 참 좋은 사람인데. 다르게 만나면 참 좋은 사람인데. 그 좋은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밖에.'


어느 벗님은 스스로를 지키려면 해로운 소리와 관계 속에 있을 때 용기를 내서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결국은 (자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의 힘으로 가야 한댔다. 만교샘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공부랬다. 도담샘은 용신과 개운법은 어찌보면 타자를 만나 자기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타자가 나의 미래라고, 나의 지금을 죽이고 타자가 되고 싶어 달려가는 마음이 미래가 된댔다. 그래야겠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남얘기에 기운을 쓰고 즐기는 사람이 잠시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만났다. 말을 매끄럽게 잘하는 편도 아닌데, 잘 하지도 못하는 말이 시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두마디를 주고받아도 마음에 가까이 가닿고 싶다. 벗님과 만나, 이야기가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을지 한없이 뻗어나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반전하고 또 막다른 골목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할 수 있는 건, 다만 날마다 조금씩 내가 아닌 내가 되기를 애써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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