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메이징 완샘이랑 학교 다니기 편한 곳에 있는 고시원을 쫙 훑었다. 비산사거리 근처, 안양 일번가, 금정역, 당정역.... 한 25군데는 본 것 같다.

방 크기가 지내기 적당한지. 여성전용층이 있는지. 창이 바깥으로 나있는지 안쪽 복도로 나있는지. 따뜻한지. 방에 환기는 잘 되는지.빨래는 어디서 하고 어떻게 너는지. 공동주방에서는 밥이랑 반찬을 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환경인지 (세끼 밥 해먹고 도시락도 싸서 다니니까). 냉장고에 개인 음식을 넣어둘 수 있는지. 샤워실과 화장실은 쓰기 편한지. 방과 방 사이의 벽은 소음을 막아줄 만큼 두꺼운지. 교통은 편한지. 가는 곳마다 꼼꼼하게, 같은 것을 체크했다.

열두시 반에 만나 점심먹고 학교 잠깐 들리고 바로 방을 보기 시작해서 저녁 아홉시에 헤어졌다. 나는 다섯시 반부터 힘이 풀려서 "샘! 배고프지 않아요? 난 당도 떨어지고 카페인도 떨어지고 배도 고파요 ㅠㅠ" 했는데, 완샘은 "마지막으로 비산동 고시원 가서 보고, 오늘 본 방들 중에서 어디가 괜찮았는지 정리하면서 저녁먹어요." 했다. 완샘도 힘들었을텐데. 한번도 힘들다는 말 안하고 내색도 안했다. 엄청 걸었고, 엄청 운전했고, 물한모금도 안마시고, 화장실도 거의 안들리면서 강행군했다. 나보다 더 열심히 물어보고 매의 눈으로 체크하고 비교하고 평가해줬다. 커피한잔 마시자고 했는데 '아까 학교에서 원두마셨다. 괜찮다.'면서 아무 것도 살 기회를 안줬다.

중간 중간 열심히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차타고 이동하면서, 걸으면서 점심먹으면서, 저녁먹으면서, 다 마치고 차마시면서, 이야기했다. 밀린 이야기인지 우리가 만났기 때문에 새로 솟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둘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온몸으로 새로 만난다. 이야기로 내 세계를 그려내어 보여준다, 는 것이 어떤 건지도 완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 만난다. 나도 완샘처럼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상태를 잘 읽어주고 있나,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것으로 돕고 기쁘게 하려고 마음을 쓰나,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내 이야기도 되고 있나, 생각해본다. 관계에 두려움 없이 개입하고 두려움없이 자신을 보여주면서 세계를 넓혀나간다. 내가 어려워하는 걸 이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걸 보면서, 내가 어려워 하는 것이 사실 한번 해보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즐거울 수도 있는 걸 배운다.

혼자 걸어다녔으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선택지를, 완샘 덕분에 만났다. 타이밍 하며 기가 막혀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겹쳐서 일이 마구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에 본 투룸이 반지층이지만 깨끗하게 수리가 다 돼있고 방도 무척 크고 도배 장판도 새거라, 거기랑 마지막에 본 고시원을 두고 결정하기로 하고 오늘 일정을 접었다.

오늘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집 잘 구해서 울 샘들 짜장면 사줄거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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