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관문학당 한의학 수업날. 일 마치고 얼른 씻고 가도 지각을 해서, 매주 맨 뒤에 앉게 된다. 전엔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았더랬다. 안경 도수가 낮아서 (안경 쓰고 0.4, 렌즈 끼면 1.0) 맨 뒤에 앉으니까 칠판 글씨도 안보이고 선생님 얼굴도 안보여서, 공부에서 멀어진 것도 아닌데 마치 멀어진 것처럼 서글펐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렌즈를 끼고 갔다. 역시 맨 뒷자리에 앉았지만 하, 오랜만에 신세경. 안경 안쓰니까 너무 너무 좋다. 5분에 한번씩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올리는 수고도 없고, 더워서 김이 차서 눈 앞이 흐려지는 일도 없고, 참 잘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한 화각. 안경 프레임이 보여줄 수 있는 구획 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분별 없는 시원한 풍경이 너무 좋다.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 한눈에 다 들어오는 세상은, 광각렌즈로 찍은 파노라마에다 3D 입체가 더해진 것 같다.

다만 렌즈를 끼면 눈이 좀 많이 뻑뻑하다. 뻑뻑한데다 이물감이 더해져서, 눈을 깜빡이기는 커녕 뜰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메마른 순간, '이건 내 눈을 갉아먹는 편함이구나' 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원점.

수술같은 건 무서워서 엄두도 못낼 뿐더러, 조건도 안된다. 검사결과, 나는 원추각막에, 안구 크기도 동공 크기도 보통 사람보다 더 크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게 왜 위험한지 이유를 얘기해준 것 같기도 하다;; 기억안난다;; 아마 레이저 조사 범위가 넓어져서 위험하고, 원추각막의 우려가 있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져서도 위험한 건가, 폭풍검색해보고 미루어 집작만 한다.), 각막도 라섹이 불가능할 만큼 얇고, 초고도 근시에, 난시까지. 진행중인 녹내장도.

써놓고 나니 세상에나, 내가 보는 세계는 어쩌면 환타지나 SF 아닌가. 눈을 뜨고 걸어다니고, 사람 얼굴을 보고, 글을 읽고, 미세한 색의 차이를 구분하고, 악보에서 음표의 높낮이를 읽고, 건반의 흰색과 검은색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침뜸이랑 한약으로 근시도 치료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던데. 한 3일 전부터 혈자리 찾아서 지압하고, 날마다 결명자차를 마시고, 구기자가 들어간 보중익기환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압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이런 정도로는 택도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때 중국인 한의사한테 근시치료침을 맞아봤다. 일주일에 두번씩, 두달이던가. 눈은 시원했지만 정작 시력이 좋아지는 건 모르겠더라. 아니면 더 나빠질 걸 늦추어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어떨까. 작정하고 눈이 좋아지는 습관을 새로 만들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안경을 벗을 수 있는 만큼의 치료와 습관은 얼만큼이면 될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 내 몸을 가지고 새로운 실험을 할 과제가 또 하나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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