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 눈뜨면 9시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7월 8월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흠뻑 땀흘리면서 일했던 알바를, 내일부터는 안가도 된다. 오늘로 끝났다. 


물한모금 마실 틈 없이 조리도구를 씻고, 야채를 씻어서 다듬고 썰고, 도시락 반찬을 담고, 허겁지겁 점심을 먹고, 몇백개의 도시락통을 씻고 도시락 가방을 빨고, 해가 질때 쯤 머리속부터 팬티까지 다 젖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치열한 시간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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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험이었다. 당장 계란말이 모양과 연근조림 우엉조림의 때깔이 달라졌다. 파프리카 다지고 쪽파 송송썰기가 빛의 속도가 됐다. 많은 설거지하는 것이 힘들지 않고, 50인분의 밥을 하는 물의 양도 잘 맞추고, 양파 대파 나물 다듬고 칼질하는 일이 두렵지 않다. 일하면서 비로소 잠재력이 드러난, 꽈리고추 꼭지따기 신동 & 감자까기 신동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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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조금 감동한 것은, 여기서는 감자 한알 까고 양파 한개 써는 것도 노동의 비용을 쳐준다는 것. 하루 일이 끝나면 서로 "너무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는 것. 집에 있을 때는 더 많은 일을 더 많은 시간을 정성들여 했어도 내가 쥐고 쓸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화폐는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그동안 네가 한게 뭐가 있냐. 너는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했다. 


하는 일의 종류는 비슷한데 대우 받는 것이 너무 다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지금도 계속 생각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7년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한게 뭐가 있냐"는 말. 집안일을 해온 경험이 있어서 세포에 집안일이 새겨져 있는 사람이면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을텐데.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의 가치와 수고를 눈으로 봐서가 아니라 몸으로 해봐서 알면 그렇게 얘기하지는 못할텐데. 


아마 남편도 내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용돈도 주고 싶었을테고, 수고가 고마운 적도 있었을테지. 나한테 직접 말해준 적은 한번도 없지만.


여튼 진심으로 "수고했다"고 마음을 말로 표현해주기를 잘하고, 집안일도 당연히 자기 일로 여기고 같이 할 사람이면 모를까, 역시 결혼 따위는 안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수거하고 걸레를 빨아 자기 방과 자기 책상을 닦으면서 사는 남자가 아니면, 결혼은 안하는게 좋을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스스로의 생활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과 함께 상대에게 짐이 될 수도.


어쨌든,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잘 생활하고 있고, 외로움도 공부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벗이 되었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내 일을 가지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참 대견해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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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일주일은 눈뜨면 밥먹고 도서관 가서 공부만 해야지 >_<' 하는 생각에 설레서 잠이 안온다 ㅠ_ㅠ 일기 얼른 쓰고 다시 누워야지. 이번주 화요일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랑 목요일 관문학당 수업에도 일찍 갈 수 있겠다. 저녁밥도 먹고 갈 수 있다. 이제 노곤하고 허기져서 졸지도 않겠다 야호!


그 다음주 월요일, 그니까 8월 마지막주부터는 2016년 후반기의 또 다른 치열함 속으로 들어간다. 문헌정보학 개강. 평생교육원 연암 읽기 개강. 글쓰기 공작소 개강 :-D 


공부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알바는 계속 해야 될 것 같다. 다음엔 어떤 일을 하면서 뭘 배울까. 다음학기의 공부는 어떨까. 무엇보다 건강해야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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