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줄 한줄 쓰면서 펑펑 울었던 일기를, 다 쓰고나서 한참 후에 다시 읽어도 다음줄 넘어가면서 또 울었던 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스윽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낫고 있구나. 나는 확실히 낫고 있다. 이러다가 한순간 또 왔다갔다 할테지만 어쨌든, 어떤 감정의 치우침에서 벗어나고 있다. 쓰면 쓸수록 좋은데, 쓰면서 자꾸 말도 마음도 달라져서다. 아주아주 자세하게 써서 가시가 정확하게 어디에 박혀서 따가운지를 발견하고, 읽으면 따가워서 엉엉 울 수 있으면 절반은 온거다. 어느날 문득 아무렇지도 않은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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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끝났는데 몸의 피로가 끝나지 않았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추워서 기운이 없어서 이불을 꼭 덮고 자는데, 잠들기만 하면 땀을 머리통이랑 목이랑 등짝이랑 가슴팍이 다 젖도록 흘린다. 한의학 수업시간에 마침 나왔는데 이걸 도한이라고 한단다. 구건순조(입술이 건조하고 마르는 것), 유정(여성-냉대하), 소수(몸이 여위는 것), 면색불화핍력(얼굴에 윤기가 없고 생기가 없음) 같은 음허증상들이 나랑 겹친다. 처방은 음을 더해주는 육미지황환.


어쩌다 이렇게 허약해져서, 수업시간에 다루는 모든 증상이 내 얘기같아서 귀를 바짝 세우고 열심히 듣고 있는지, 과하게 긴장하고 듣는 내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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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부터는 관문학당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3주동안 강독하고, 세미나에서는 "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글쓰기공작소는 "장르와 상상" 새 학기를 시작하고, 문헌정보학은 팀발표 과제가 있다. 새로 시작하는 공부들이 설렌다! 다만 이 공부에 끌려가지 않고 잘 만나려면 미리 읽을 것도 준비할 것도 많다.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로맹 가리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레이디L" 책도 빌려다 놨는데,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로 반납할 판이다. 산책도 꾸준히 해야 몸이 버티는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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