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
설레서 네시까지 잠을 못 잔 부석한 피부와
집 현관문에서부터 사무실까지 9분동안 재빨리 걷느라
찬바람에 빨개진 볼로 들어선 사무실에는
관장님이 한참 다리미질 중이다.

다리미가 지나가는 곳에서 치익 치익 소리가 난다.
물이 담긴 종이컵이 옆에 있구나.
손으로 물을 뿌린 자리에 다리미가 지나가고
치익 소리가 또 들리고
검은색 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민경 선생님이 입을 거야.
새거가 아니어서 미안하네.
깨끗하게 빨았어.
물려입는 거야.”

관장님은 출근하자마자 다려준거다.
내가 오늘 처음으로 출근하자마자 입을 수 있게,
내가 입을 작업복 앞치마를.

“사서 노민경” 명찰도 손으로 써주셨다.

아, 순간 눈물 왈칵 쏟을 뻔했다.
극진한 환대. 내가 뭐라고.
이 옷 입고 명찰달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눈에 담은 몇 분 동안의 장면 그대로
영원히 기억 어딘가에 박제해놓고 싶다.



+

인사.
강원도 사람 특유의, 참 좋아하는,
나한테는 익숙한 정서인데,
덤덤하면서 선량하고 진실한 기품이
모두에게 다 있다 :-D
내가 제일 과하고 소란스럽고 의뭉스럽네.

커피 한잔씩 들고 명절지낸 얘기하다 같이 웃는데
나는 울 뻔했다;;;
이런 사람들이 내 동료구나.
아끼고 지지하고 웃겨주어야지 :-D


+


내가 일하게 될 3층.
도서관에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일 중에
주로 자료 관리 전반을 맡을 것 같다.
도서와 비도서 자료를
도서관에 들여오고 배치하고 내보내는 전 과정이다.

“자료업무가 도서관의 꽃이죠.”
인수인계해준 사서샘 말에
기쁜 한편
마음 살짝 무거운 한편
‘너무 잘왔네, 내가 이보다 잘 맞을 수 없는 적임자!’ 하고
(앞으로 닥쳐올 일은 전혀 모르는 채로) 일단 먼저 흐뭇.


+

1층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귀가 쫑긋!
뭐지 뭐지 이 귀여운 소리는 ㅠㅠㅠㅠ
14개월 아기다.
지금 졸음이 쏟아지고 있다는 걸 딱 들으면 아는
힘없고 칭얼대는 울음소리다 ㅋ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
영락없는 낮잠시간 :-D

아, 이 잠투정 소리.
당장 들어올려 품에 끌어안고 둥게둥게 쪽쪽 하고 싶은
이 울음소리를
일하는 곳에서 들을 수가 있다니.
실화냐.
이 곳은 신의 직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말로 정말로 진지하게 들었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같은 모습일 것”
보르헤스는 말했다.

“천국이 있다면
졸음에 겨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도서관 같은 모습일 것”
내 말이다 ㅋ


+


사서가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에
발 요렇게 모으고 열심히 듣는 아이들.
너무 예쁘다 ㅠㅠㅠㅠ

애들 앉은 뒷모습이,
요만한 발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뭉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정이 해결  (0) 2018.02.27
도서관에 피아노가 있다  (1) 2018.02.27
새 환경에 새 몸  (0) 2018.02.20
가장 진화한 형태의 결혼  (3) 2018.02.15
나는 다만 나만 어쩔 수 있다  (0) 2018.02.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