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나를 위해 뭔가를 하는 저녁시간을 보내자고
비장하게 결심했다,
51번 버스타고 퇴근 하면서는.

일단
맛있는 거 먹으라고 엄마아빠가 보내준 용돈으로
맛있는 걸 사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는
첫 단추에서 흡족 :-D

두 번째 단추는 끼우지 못했다.
과전류로 두꺼비집 스위치가 탁 내려가는 것처럼
밥먹고 나서부터는 '오늘은 이만' 하고
정신 스위치가 탁 내려갔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채로
선거 뉴스들을 훑어보다가 멍-
정신 들려고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잠시 반짝했다가 졸고, 또 쓰다 졸고, 하면서 멍-
'몇시나 됐지?' 하고 시계를 보니 잘 시간이 넘었다;;

일하고 와서는 곧잘 정전이다.
오늘만큼은 이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해도
타이머 맞춘 것처럼 이 시간에 또 정전모드.


잘먹어서 노곤하게 풀어져서만은 아닌 것 같다.
저녁은 365일 먹으니까;;

방에 있어서 그런가?
방에 있으면 바깥의 소리도 빛도 없어서
밤인지 낮인지 비오는지 바람부는지 모르겠긴 하다.
세상엔 오직 형광등 불빛이랑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랑 나만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이유 뿐만은 아닌 듯.
다르게 보면 무언가에 잘 집중할 수도 있는
최고의 조건일 수도 있는 거니까
조건이 아니라 내 상태의 문제다.



쓰고 싶은 이야기도 못 쓰고
읽고 싶은 책도 못 읽은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아깝다.
내일까지 도서관에 반납할 책 일곱 권을
한 권도 끝까지 못 읽었다.

가만 있으면
하루이틀이 아닌 날이
이대로 쭈욱 가서
말 그대로
하루이틀이 아니게 되겠다.

일하는 시간이나 누군가와 함께 있는
딱 고때만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같다.




어떻게 하면 이 정전상태의 되풀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떡하면 혼자 있을 때도 맑고 명료하게 존재할까 +_+

생각해보면 역시 미련없음과 부지런이 답이다 +_+
졸거면 미련없이 일찍 잘 자고,
안 잘거면 더 잘 자게 산책하고,
부지런 떨어서 시간 맞춰서 잘 챙겨먹고,
뭘 하고 싶으면 틈새 시간을 내서 (카페나 도서​관으로) 공간 이동하기.

오늘도 기를 쓰고
홀로 우아한 저녁시간을 가져볼 테다!
마음비우고 일찍 자고 새벽시간을 노려보든지.
중간고사때 새벽에 공부하는 시간이 의외로 좋았다.
시험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거라는 절박함이랑 푹 잔 상태가 잘 만나서
한과목당 두시간 남짓 공부하고 시험지 다 채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의식이 맑은 새벽이라니,
평생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새 시간이다.
설마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아무리 야행성 동물이래도
주로 몸쓰는 시간대가 달라졌으니
맑게 깨어있는 시간도 달라지나보다.
피곤함이 내 삶에 준 최고의 선물인 듯 :-D


생활의 리듬을 잘 타보자.
홧팅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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