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어떤 관계에서 막대기가 된다. 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대답을 하고, 눈이 안보이게 웃고, 의기소침하고, 글썽이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고, 숨쉬기 힘들 정도로 설레어 하는, 갓 구워낸 호떡처럼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생명인데. 가끔 어떤 관계에서 상대의 마음의 거울에 비친 나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막대기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나쁜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그저 "막대기가 되는 것이 싫다"고 말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입을 벙긋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진다. 그리고, 곧 온 몸이 아프다. 오래 견디지도 못한다. 다시는 나를 막대기로 만드는 관계 속에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 다짐한다. 


나는 누군가를 막대기로 만들지 않아야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에 대꾸를 해서 대화를 이어가고, 시덥잖은 우스갯소리를 하고, 반응을 돌려주어야지. 내가 그렇게 한다고 관계가 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해도, 공기중에 오래 둔 찰흙처럼 마음이 굳은 사람한테는, 스스로 작정하고 마음을 굳힌 사람한테는 소용이 없는 듯.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싫어하고 아파하는 걸 내 앞에 있는 사람한테 하지 말아야지.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생명으로 대해야지. 어쩌다 어쩌다 나마저 굳고 메마를 것 같으면 얼른 물을 더 붓고 반죽을 해서 다시 말랑말랑해져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막대기가 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나와 연결된 사람을 한번 한번 마음다해 말랑말랑한 생명으로 먼저 대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겠다. 마음 나눌 수 있는 생명이라는 신호가 돌아오지 않는 걸 알면, 얼른 내려놓아 흘려보내고 기운 아끼기. 부딪혀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이 더디면서 불확실한 길이, 가장 확실한 길이겠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기 품은 달덩이배 꿈  (0) 2016.09.09
효과없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  (0) 2016.09.04
세미나 끝  (1) 2016.08.26
세미나 발제, 위기  (0) 2016.08.25
2016년 8월 자화상  (0) 2016.08.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