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서 좋은 점은
마음까지 아플 여력이 없다는 거다.

웃는 건 할 수 있는데,
울거나 슬퍼하거나 걱정하거나
어딘가에 골똘히 신경쓰거나 화낼 힘까지는 없다.

하루 이틀만 먹는 것, 자는 것, 마음쓰는 것, 몸 쓰는 것 중에 어느 하나를 방심해도 몸상태가 바닥을 치니, 그저 단순할 수 밖에 없어서 좋다. 아프면 '지금 붙들고 있는 생각이 병이구나. 지금 하는 짓이 병이구나. 싹 놓아야지.' 한다. 마음도 일상도 단순해져서 좋다. 덕분에 조용하고 고만고만한 나날을 보내면서 잘지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극도로 단순해야지만 지나갈 수 있는 시기라는 걸 몸이 먼저 감각해서, 더 큰 고통을 피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이 골골거림은 내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꽤 훌륭한 브레이크 아닌가. 고맙게도.

아파서 산다.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힘을 다 빼고, 물길 따라 물 흐르는 것 처럼, 어떤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지내는 상태도 꽤 괜찮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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