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랑 영화 <아홉살 인생>을 보다가
끝까지 못 보고 껐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인데도
옛날 영화라 그런가
아이들의 인권 감수성에 충격을 주는 에피소드가
곳곳에 등장한다.

예전에 볼 때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멈칫했는데
아이들의 눈으로 다시 보니
어느 부분에서 불편한지 보인다.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폭력이 너무 많아.
쓸데없이 자세하게 묘사하고, 쓸데없이 많다.
그 때마다 폭력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가.
폭력의 이유는 교사, 가장, 부모, 순정의 입장을 대변한다.


+


어린이들이랑 나랑 손 꼭잡고
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영화 장면 장면마다 토했다.

“왜 때려? 말로 해도 되는 거잖아?
왜 저게 맞을 짓이야? 너무 많이 때리는데?
미쳤나봐 왜 저렇게 사람을 세게 때려?
당장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신고해야지 신고”

한결이 입에서 신고, 라는 말이 나왔다.
한결이한테 경찰은 믿을 수 있는 대상인 거다.
아이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경찰이 되기를
민주주의의 눈으로 감시하는 시민이 되마.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공포가
간질거리는 감성보다 압도적으로 크게 다가온
호러 스릴러 한편이었다.

혹시
아홉살 즈음의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불합리한 폭력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방심하게 한 다음
치밀하게 고발하려 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 이 영화는 성공한 것 같다.


+


그리고, 이수역 폭행사건.

이수역 폭행사건에 대해 들은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건
진실이 뭐냐고 묻는,
얼핏 보기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태도다.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유에 따라 다수 남성이 소수 여성을
집단으로 폭행하는 것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정서가
무섭다.

좀 더 들어가보면,
타인의 신체와 정서에 폭력을 가하는 것에
심리적인 저항이 강하지 않은,
폭력이 내면화된 사회 무의식이 무섭다.

맞을 짓을 했다고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사람이 맞을 짓이라는 것이 있어?

아이나 여성이나 장애자에게 휘두르는 물리적인 폭력은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목숨이 오가는 공포이고
그 자체로 비겁하고 끔찍하다.

아홉살 아이의 작은 몸을 피가 나도록 때려대고 나서
아이의 잘못을 말하는 교사와 부모처럼
이미 벌어진 폭력에 대한 초점은 명분을 갖기 위해
무슨 짓을 했길래 맞았냐는 질문으로 슬며시 넘어간다.

사람이 맞을 짓은, 없다.
나이, 성별, 장애, 외모, 언어, 인종, 민족, 종교, 지역,
성적정체성, 사회적 신분, 그 외의 모든 다름을 불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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