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붙어있지를 않는 상사를 겪고 나니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남아있질 않는 이유는

굵직한 것만 추려도 너무 많고 

떠올리고 쓰는 과정에서 내 정기신이 닳으므로 패스.

아우 다 써버릴까 확....




그 중에,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일 시키는 기술이 심각하게 부족한 것 만큼은

반면교사 삼아 배울게 있다.


그래서 제목은 가칭

"(퇴사를 부르는) 일 시키기의 기술"




자기가 직접 그 일 안 할거면 

시키는 거라도

일하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게 지시해야지.


...... 한참 쓰고 다 지운다.

내가 뭘 더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서

주변 사람이 사라져가는 삶 그 자체가 

그 성격이 만들어 온, 만든, 만들어 갈 운명이니까.




이 상사를 겪으면서

그동안 내가 만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잘 시키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를

새삼 깨닫는다.


시작하기 전에,

작업의 범위와 결과물을 명확하게 한다.


자원이 낭비되거나 불필요해서 덜어낼 부분,

바꾸면 더 좋아질 부분을 

회의하면서 함께 조정한다.


명확하게 단위를 나누어 업무를 분장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일정을 잡는다.


성취동기를 계속 부여하고

일정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일이 떨어지지 않게 보호해주어

집중하고 신나게 달릴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게

일을 잘 시켜주는 사람이 상사.


가장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상사.


전에 겪은 시행착오를 다시 겪게 하지 않도록 애쓰고,

구성원을 비효율과 비합리로부터 보호해주는 사람이 상사.


더 나아가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까지 지치지 않고 좋아서 할 수 있게 북돋아주고,

이 일을 통과하고 나면 

더 어렵고 큰 일도 할 수 있게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이 상사.


..........인줄 알았다, 여태까지는.

그런 좋은 사람들이랑 일했다.

그 시절 그 분들을 상사라고 부르기도 적당치 않다.

한분 한분, 너무 좋아하고 존경해서.


나는 존중받았고, 신뢰받았다.

상사를 존경하고 신뢰했다.


존중, 존경,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과정과 결과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속속들이 나타났다, 고 생각한다.





방심하지 말아야지.

언젠가 내가 혼자 다 할 수 없는 크기의,

함께하는 일의 진행을 맡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고민해야지.

능숙하고 세련된 일 시키기의 기술은 결국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선강탈자  (0) 2018.02.02
2018 SF토크콘서트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0) 2018.01.26
2017 블로그 결산  (0) 2018.01.14
좋아하는 것 위험한 것  (0) 2018.01.12
속초 본가의 첫 밤  (0) 2018.01.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