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티비를 볼 수 있는 평화


이번 추석에 노씨일족 다 같이 부여 여행을 가려다가
급 일정이 바뀌어서, 엄마아빠집이 있는 속초에 모였다.

콘도에 왔는데, 오늘 밤도 걱정이다.
전날 모두 잠든 밤에 울음이 터진 15개월 애기 조카 가을이.
지쳐서 곯아떨어지기 직전까지 웃고 뛰고 싸우는 여섯살 온유.

애들한텐 잠자리가 하드 코어였겠지.
오늘은 잘 재울 수 있을까.
언제 잠들까. 잠이 들 수는 있을까.

밤 열시 반.
이미 애들이 잘 시간은 넘었고,
어른들은 술과 안주를 앞에 두고
늦게까지 이야기꽃이 필 기세다.

오늘은 초등 이하 어린이들(한결 온유 가온 가을)을 다 데리고
엄마집에 가서 잘까 어쩔까
노신영한테 얘기했더니,

“가을이랑 온유 둘만 없으면..... 평화야.”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한 신영이 말에 크게 웃고,
아쉽지만 친척들 두고 나와서
둘째들만 엄마집에 데려가서 자기로 했다.

콘도 복도에 나왔는데
콩알만한 가을이랑 밤톨만한 온유랑
각자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이 나서
각자 돌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각자 이리저리 도도도 뛴다 ㅋ

둘만 없으면 평화라는 신영이 말이 너무 맞아서 또 웃고
엄마집에 도착했다.


“노신, 거기는 평화가 왔냐”
“(옅은 웃음띄거나 집중하고 있는 단체샷 전송 후) 모두가 티비 시청중”
“드디어 티비를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군. 즐겨.”


개운하게 씻겨서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 눕히니
가을이도 온유도 바로 떡실신 :-D




2. 엄마, 죽어야지


온유는 (내 동의 없이 아무 때나 자기 맘대로)
나를 괴수의 왕으로 정해놓고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 하면서 공격한다.
엄청나게 진지하다. 장난이 아니다.

처음 한두번은 공격기술 이름을 읊느라고
입으로 내는 소리가 많이 요란하다.

요 때 윽, 하고 몇 번 죽는 시늉을 해주면
용사가 세상을 구한 표정을 하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른 거 하고 노는데.
입이 바쁜 공격이 날아올 때마다
바로 바로 죽어주는 게 참으로 일이다;;;

다른 일에 정신팔려 대꾸가 없거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못하게 하면
어느 순간 이를 악물고 주먹에 힘을 싣는다 =_=;;
이게 너무 아프다 ㅠㅠ



오늘도 느닷없는 공격개시.

우리 둘 모두의 평화를 위해
영혼없는 목소리로 “으으~~”를 반복했더니
온유가 짜증을 내면서
실감나는 목소리 연기 지도를 해준다;;;

“엄마.
으윽! 하면서 죽어야지.
신룡의 검법! 으으윽! 해야지.”

“알았어.”




“간다!
챙~ 챙~ ! 허어잇! 내 칼을 받아라!”

“흐어억! 신룡의 검법! 으윽!”

“어둠의 불꽃 검법!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촤앗! 허어잇!”

“으으윽! 신룡의 검법! 분하다 으윽~”

“토네이도 닌자~~ 폭풍~~ 물수리검! 푸퐈퐈퐈퐈퐈”

“으윽! 신룡의 검법! 크허억-”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옆에서 혼자 걸어가던 사람이
우리 얘기 들으면서 푸학 소리내서 웃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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