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샘은 매일 밤 열한시에 길고양이 밥을 챙겨준다.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야해" 하면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파도 나간다.

"처음엔 숨고 경계하더니, 이젠 기다려."

비올 땐 비를 그을 뭔가를 챙기고
추울 땐 집에 넣어줄 핫팩을 챙긴다.

"겨울이 늦게 늦게 왔으면.
고양이한테 추위는 혹독해서." 하고
여름이 가는 걸 안타까워한다.

잘 못 먹어서 못생기게 크는 걸 마음 아파한다.
잘 못자서 수명이 짧은 걸 마음 아파한다.


나도 풀샘을 기다리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반드시 오니까.
경계해도, 못생겨도, 얼마 살지 못해도, 추워도 더워도
매일 보러 와주니까.
당연한 게 하나도 없고 아슬아슬한 하루하루지만
살아만 있으면 매일 볼 수 있으니까.

이번 생에는 풀샘한테 듬뿍 사랑받는 고양이.
이번 생에는 풀샘을 날마다 기다리고 사랑하는 고양이.
좋겠다.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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