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에게 중요한 세가지를 꼽으라면

- 밴드 러버부츠
- 솔멩이골 작은도서관
- 인문학 강좌


- 밴드 러버부츠

이제 무대울렁증이 거의 없어진 것 같다 :-D
무대에 계속 서다보니 어느새 몸이 익숙하다. 그저 음악의 일부분일 뿐인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서, 모든 소리가 흘러들어온다. 바짝 긴장했을 때는 내 소리만 너무 잘들려서 마구 떨었는데, 지금은 마이크를 타고 오는 보리언니의 청량한 목소리도, 심취한 표정의 한돌이 기타도 들린다. 앞에 있는 사람의 신나는 얼굴도 다 보인다 :-D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더 갈고 닦아 깊이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 간이 좀 커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계속 듣고 싶은 노래도, 부르고 싶은 노래도, 연주하고 싶은 노래도 많고, 음색이 아름다워 배우고 싶은 악기도 참 많다.

대단하고 출중한 동료들이 있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 솔멩이골 작은도서관

도서관은 어쩌면 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갈 궁리를 하고, 함께 책읽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관계를 만들고.

일년치 설렘이 여기서 다 나왔다.



- 인문학 강좌

스피노자, 니체, 카프카, 춘향전과 토끼전, 도스토옙스키, 루쉰, 왕양명, 연암 박지원.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있는 힘을 다해서 온 정성과 몸과 마음으로 전해준, 보석같은 선생님들.

계속 공부하고 싶다. 빈 말 말고 삶을 나누는 진실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고, 나를 돌아보는 글을 쓰고 싶고, 열심히 집을 청소하고 싶고,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음악을 더 하고 싶고, 세상이 좀 더 정의로워지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줘서 그저 고맙다.

내년도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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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라이팬에 잡채를 데우고 남편은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얘기했다.

"있지, 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보는데, 강원도 사투리를 들으니까 가슴이 막 저미는거야. 내 마음의 뿌리는 강원도에 박혀있나봐. 나중에 언젠가는 강원도 말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어.

도시에서 탈출해서 시골에 돌아오는 건 성공했는데, 강원도로 돌아가는 건 성공 못했네. 지금은 여기에 살지만 나중에 더 나이들면 강원도에서 살고 싶어."

남편은 피식 웃더니

"그래 잘 생각했다! 나중에 갈 것까지 뭐 있노! 니가 바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다. 당장 장모님한테 전화하고 속초가서 살아라. 하고싶은 공부 하고.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어린이집이랑 할머니랑 나랑 키우면 된다. 엄마아빠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잘 얘기하면 된다.

내가 너같으면 다 놔두고 얼른 가겠다. 그렇게 하고 싶은게 많은데 어찌 이러고 힘들게 사노."


그렇네. 결국 내 마음이다.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고, 지금은 여기 있기로 선택한 거다.
마음을 꿰뚫어보는 남편의 맞장구에 크게 웃고, 냠냠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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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댁에 어린이들을 맡기고, 집에서 한시간을 달려가, 청주 SFX에서 남편이랑 "호빗:다섯군대의 전투" 보고 왔다.

남편은 솔뫼가공공장에서 새벽부터 나가 메주 만들고 왔고, 나는 하루종일 온유랑 씨름하다 모자랑 잠바만 걸치고 바로 나간거라, 둘다 엄청난 몰골이었다 ㅋ 영화관에 말끔하게 멋내고 온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재미나게 보고 나왔다.

"남편! 가난하고 초라해도 ^^ 내 남자가 있으니까 좀 든든하고 좋다. 하나도 안설레고 두근거리지 않아서, 옆에 있어도 신경 안쓰이고 영화에 완전 푹 빠질 수 있어서 좋다! 이런 관계도 괜찮네? ㅋㅋㅋ"

"그게 뭔 소리냐~~"

"나 7년 전 오늘 쓴 일기를 봤는데, 그때도 누구를 열심히 사랑하고 있었나봐. 나를 드러내는 용기, 이 사람이라면 하고 믿는 용기 등등 사랑을 시작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고 썼더라고. 그때는 사랑하는게 그렇게 용기를 내야 했고 그렇게 어려웠는데 7년 지나고 이렇게 편안한 관계에 있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나쁘지 않아!
근데 우리 남편도 맨 처음엔 설레고 떨리고 막 보고싶고 그랬는데. 이렇게 되었네. 자기도 나 처음 만났을 때 설레고 떨리고 보고싶고 그랬어?"

"나는 그런 적 없다...."


이놈 아저씨 그럼 그렇지;;;



돌아오는 길. 증평 어디쯤 길가 편의점 앞에 잠시 멈췄다.

남편 : KGB 사갈까.

나 : 오~~ 자기도 KGB가 좋아졌어?
맛있지? 상큼하고 톡쏘고 달달하고.

남편 : 아니. 너랑 먹으려고 그러지.
그게 무슨 맛이냐. 소주에 사이다를 타도 그거보단 맛있겠다.

오올 내가 좋아하는 술이라는걸 알고 ㅋ

거기에 없어 괴산 읍내까지 가서 네 캔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어린이들도 어머니댁에서 재우니, 한잔 하면서 각자 좋아하는거 하면서 놀다가 두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자겠다;;

불량부모놀이다 ㅋ

나는 오늘치 일기쓰기를 선택했다 :-D



+ 2007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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