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딩 내내 그랬다.
매년 1월 1일 자정 송구영신예배 마치고,
성경 한구절이 적혀있는 코팅 책갈피 "올해의 말씀"을 줄서서 뽑고, 떡국을 먹고, 교회애들이랑 밤을 새서 놀다가, 조양동 속초해수욕장으로 아침해 뜨는 바다를 보러 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 깊은 수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ㅋ

같이 있으면 마냥 재잘재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웃음이 흘러넘치는 한편, 누군가가 신경쓰이고, 누군가는 나를 신경쓰고.
나는 모두에게 사이 좋은 듯 공평한 듯 대하면서, 그 친구가 나한테는 조금 더 관심을 주는지를 살짝살짝 살피다가, 그냥 다 같이 우르르 바다에 몰려가서 후덜덜덜 떨면서 해뜨는 것 보고 감탄 감탄! 뭔가 하나의 끝을 맺은 기분으로 돌아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1일은 다 지나있고, 2일부터가 진짜 새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

감정을 거기서 더 키우지 않았고, 그래서 마주친 순간마다 당당하고 활짝 반가워할 수 있었다. 제대로 열어볼 수도 없었던 그 감정은 혼자 꼭꼭 싸매고 도망다니기만. 대신 그 관계는 평화롭고 돈독하다. 지금까지도. 사는 모습을 쭉 지켜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가끔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계절이 바뀌면서 불쑥 튀어나오면, 숨어서 혼자 훌쩍훌쩍 운다. 바보놀음 바보놀음 흐엉 ~_~


지금 와서 보니, 내 사주에 목기가 없어서 그런가 싶다. 똑바로 맞서고, 들이대고, 뚫고 헤쳐나가는, 용기같은 것.
사소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도 용기가 필요하다. 있는 힘껏 용기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일기쓰면, 묶어두었던 이야기가 주머니를 열고 하늘로 날아가면서 점점 홀가분해지겠지? 용기가 필요할 때를 퍼뜩 알아차리고 한발짝 디뎌볼 수도 있겠지. 홧팅!


새해가 되었는데 바다를 한번 못보네.
확 보러 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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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하는 공간이 책상인 걸 깨닫고 나니, 끓어넘쳐서 뚜껑을 밀어내고 비집고 나오는 고추장병처럼 기억이 흘러 넘친다!
(솔뫼가공공장에서 끓어 넘친 고추장병 열어서 고추장 덜어내고 유리병 씻는 일 좀 했다. 요 때 써먹는 ㅋ)

나 어디 가면 책상을 눈에 담아두고 돌아오는구나. 책상의 모양, 재료, 색깔, 배치,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기억하는 그림속에 자세하게 남아있다. 마음이 닿는 곳이 책상이었구나.

곰 세마리네 집에 들어가서, 큰 의자 중간 의자 작은 의자에 앉아보고 마음에 드는 의자에 앉았던 골디락스처럼, 책상을 보면 상상의 세계에 들어가 살그머니 앉아본다 ㅋ

누군가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내가 앉아서 책도 읽고, 누구랑 친구가 되고, 그래서 여기 머물고 싶은지 아닌지 등등 눈 앞의 상황에 따라 내용을 다르게 해서, 반짝하는 짧은 순간에 다 그려보고 결정도 한다. 책상을 가운데 두고 펼치는 환타지 드라마 공상놀이;;;
책상에서 펼쳐졌을 법한, 펼쳐질 일을 상상하며 그 공간을 기억한다. 책상 근처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만난 사람을 기억한다.


내 책상이 필요하구나. 집에도 밖에도.
책상과 관계맺을 공간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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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족 송년회 중에, 애들 방 만들어주는 얘기하다가 자기가 집착+애착하는 공간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어렵게 살아서 자기 방이 있던 적이 없단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 집을 얻으면서 자기 방이 생겼다고. 그래서 특별히 자기 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한결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쓸 방을 별채로 만들면서 자기 방도 만들겠단다. 안채는 나를 주고 집을 나가겠다고 ㅋ (그래. 우리는 떨어져서 살아야 해 ㅋ)

현수언니도 아주 작은 방에 세 자매가 모여 지내면서 까르르 웃고 수다 떨면서 살았단다 ^^
대신, 심고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가, 집을 선택하는 언니의 기준이란다. 어디 가면 마당만 본단다.
꽃과 채소를 심고 가꾸길 잘하고, 나무든 풀이든 이름 물어보면 척척 알려주는, 걸어다니는 식물백과 최현수랑 너무 어울리는 애착공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내 방이 있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잠도 엄마아빠랑 떨어져서 잤다. 남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방 세개 있는 아파트에 이사갈 때까지 엄마아빠랑 방을 같이 쓰고 같이 잤다. 동생은 불만이 대단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엄마한테 투정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내 방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 때 동생의 불만은 나한테 별로 와닿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이야기 나누면서, 바로 옆에 있는 속상한 동생을 보고도 무심했던 어린 나를 만났다. 내일 당장 노신영한테 전화해야지.



여섯살 때부터 내 책상도 있었다. 여섯살 때 책상 앞에서 놀던 기억이 있다. 원목으로 만든 엄청 무겁고 튼튼한 책상이다. 상판 밑에 서랍이 두개, 발판도 달려 있고, 오른쪽 아래에도 두개의 서랍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썼다.

일단 책상앞에 앉으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식구들 다 잠든 조용한 밤에 혼자 읽고 쓰고 정리하는 시간이 그렇게 그렇게 좋았다.

어떻게 여섯살짜리한테 그런 번듯한 책상이 있었지? 엄마한테 전화해봤다.

"책상? 그때 최고 좋은 걸로 샀지. 보루네오에서 25만원 주고. 너 다섯살 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한글을 다 뗐어. 여섯살 때 눈만 뜨면 앉아서 책을 읽어대는데 어떡하냐. 기대를 하고 사줬지. 엄마아빠는 너 선생님 하라고 그렇게 책도 많이 사주고 가르치고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 모양으로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아이고, 아이고~"

후반부는 늘 듣던 말 ㅋ
엄마아빠는 애 둘 낳고 살림하는 서른 여섯살 딸이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 될 수 있을 거라고, 정말로, 믿고 있다. 얼른 정신 차리라고 전화 할 때마다 이야기한다. 그 믿음이 가슴아프도록 고맙다. 내가 지금도 엄마아빠의 가장 빛나는 분신이고 가장 빛나는 자부심이라고, 아주 대놓고 딸에게 들려주는 사랑고백. 결혼생활과 육아와 살림에 눌려 납작해진 나는, 시공간을 넘어선 이 사랑의 힘으로 거만함을 되찾곤 한다.

1985년도에 25만원짜리 원목책상이면 어마어마한 값이다;; 30년 지난 지금도 25만원은 어마어마한데;;
어릴적 나를 향한 엄마의 선택은 늘, 그 당시 아빠의 월급과 다른 엄마들을 생각하면, 과감하고 파격있고 대담하다. 내가 책을 하도 좋아해서, 책을 대놓고 사주기 위해 출판사에 판매사원으로 들어갔을 정도다. 피아노 가르치고 사준 것도 그렇고. 엄마 얘기는 나중에 제대로 써봐야지.



그랬다. 여섯살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늘 책상이 있었고 내 방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사라진 애착공간은 책상과 책상앞에 앉을 여유였다.

찾았다! 마음 둘 내 공간 >_<

책상과 여유를 되찾으면, 그 다음 나에게 돌아올 것은 무엇일까? 기대감에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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