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족 송년회 중에, 애들 방 만들어주는 얘기하다가 자기가 집착+애착하는 공간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어렵게 살아서 자기 방이 있던 적이 없단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할 때 집을 얻으면서 자기 방이 생겼다고. 그래서 특별히 자기 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한결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쓸 방을 별채로 만들면서 자기 방도 만들겠단다. 안채는 나를 주고 집을 나가겠다고 ㅋ (그래. 우리는 떨어져서 살아야 해 ㅋ)

현수언니도 아주 작은 방에 세 자매가 모여 지내면서 까르르 웃고 수다 떨면서 살았단다 ^^
대신, 심고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가, 집을 선택하는 언니의 기준이란다. 어디 가면 마당만 본단다.
꽃과 채소를 심고 가꾸길 잘하고, 나무든 풀이든 이름 물어보면 척척 알려주는, 걸어다니는 식물백과 최현수랑 너무 어울리는 애착공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내 방이 있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잠도 엄마아빠랑 떨어져서 잤다. 남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방 세개 있는 아파트에 이사갈 때까지 엄마아빠랑 방을 같이 쓰고 같이 잤다. 동생은 불만이 대단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엄마한테 투정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내 방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 때 동생의 불만은 나한테 별로 와닿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이야기 나누면서, 바로 옆에 있는 속상한 동생을 보고도 무심했던 어린 나를 만났다. 내일 당장 노신영한테 전화해야지.



여섯살 때부터 내 책상도 있었다. 여섯살 때 책상 앞에서 놀던 기억이 있다. 원목으로 만든 엄청 무겁고 튼튼한 책상이다. 상판 밑에 서랍이 두개, 발판도 달려 있고, 오른쪽 아래에도 두개의 서랍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썼다.

일단 책상앞에 앉으면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식구들 다 잠든 조용한 밤에 혼자 읽고 쓰고 정리하는 시간이 그렇게 그렇게 좋았다.

어떻게 여섯살짜리한테 그런 번듯한 책상이 있었지? 엄마한테 전화해봤다.

"책상? 그때 최고 좋은 걸로 샀지. 보루네오에서 25만원 주고. 너 다섯살 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한글을 다 뗐어. 여섯살 때 눈만 뜨면 앉아서 책을 읽어대는데 어떡하냐. 기대를 하고 사줬지. 엄마아빠는 너 선생님 하라고 그렇게 책도 많이 사주고 가르치고 기대했는데 지금은 그 모양으로 시골에 들어가서 살고... 아이고, 아이고~"

후반부는 늘 듣던 말 ㅋ
엄마아빠는 애 둘 낳고 살림하는 서른 여섯살 딸이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 될 수 있을 거라고, 정말로, 믿고 있다. 얼른 정신 차리라고 전화 할 때마다 이야기한다. 그 믿음이 가슴아프도록 고맙다. 내가 지금도 엄마아빠의 가장 빛나는 분신이고 가장 빛나는 자부심이라고, 아주 대놓고 딸에게 들려주는 사랑고백. 결혼생활과 육아와 살림에 눌려 납작해진 나는, 시공간을 넘어선 이 사랑의 힘으로 거만함을 되찾곤 한다.

1985년도에 25만원짜리 원목책상이면 어마어마한 값이다;; 30년 지난 지금도 25만원은 어마어마한데;;
어릴적 나를 향한 엄마의 선택은 늘, 그 당시 아빠의 월급과 다른 엄마들을 생각하면, 과감하고 파격있고 대담하다. 내가 책을 하도 좋아해서, 책을 대놓고 사주기 위해 출판사에 판매사원으로 들어갔을 정도다. 피아노 가르치고 사준 것도 그렇고. 엄마 얘기는 나중에 제대로 써봐야지.



그랬다. 여섯살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늘 책상이 있었고 내 방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사라진 애착공간은 책상과 책상앞에 앉을 여유였다.

찾았다! 마음 둘 내 공간 >_<

책상과 여유를 되찾으면, 그 다음 나에게 돌아올 것은 무엇일까? 기대감에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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