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로3가에 있는 국악사에 가서
장구채랑 쇠채랑 제일 저렴한 연습용 쇠를 샀다.

"연습용 꽹과리는 어딨어요?"
"저쪽이에요. 두드려 봐서 소리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

몇개 두드려봤는데 그게 그 소리 같다. 모르겠다;;
호가 생각났다. 호는 들으면 알텐데.
담에 좋은 쇠 살 때는 모시고 와야지.


"들어도 좋은 소리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와서 여러개 꺼내서 하나씩 두드려보고
"손 좀 펴봐요." 한다. "이게 소리 괜찮은데 좀 커서."

"저 손 커요.
근데 꽹과리마다 크기가 달라요?
작은 것도 있어요?
큰 거랑 작은 거랑 뭐가 달라요?"
"작은 건 소리가 큰 것보다 좀 높아요."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봤더니 같은 연습용이라도
크기가 각각인게 보인다.
몇개 두드려봤더니 과연 내 꺼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높낮이 말고도 내가 구별할 수 없는 뭔가도 더 있을 것이다.
그걸 들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

이젠 내 손에 맞는 도구가 있다.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내 악기가 있다.
가슴이 벅차다.

중학교 때도 대학교에서도 귀농해서도 풍물했는데,
서른 일곱에서 여덟 넘어가는 이제야 채 하나 마련한다. 얼마 하지도 않는 걸.

때 되면 장구도 사야지 :-D
전에 명의형님이 나 장구 없다고 하니까
"아니 친지가 몇년인데 여태 자기 장구 하나도 없어! 지독한데!"
해서 같이 엄청 웃은 적이 있다 ㅋ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지독하게 버텼다.


+

과천에 있는 줄타기 전수관에서
11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풍물을 배우고 있다.
회비는 한달에 만원.

배우는 가락은 전에 쳐본 가락인데
쇠를 같이 배우니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롭고 재미나다.
연습하는 두시간 내내 나도 모르게 방긋 웃는다.
웃는 얼굴이 기본 셋팅이란 걸 안 건
이상하게 얼굴 근육이 땡겨서 창문을 보고서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웃고 있었다.
온 몸이 흥겹다. 너무너무 좋다.

다른 건 몰라도, 악기랑 책읽는 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물리지도 않고 꾸준하다.
다른 좋아하는 것도 많은데, 더 좋아하는 것은 몸이 다른 것 같다.
생각만 '하고싶다, 해야지...' 하고 있지 않는다.
기회가 오면 일단 다른거 제치고 덥썩 잡고,
기회가 없으면 찾아 나서서 만드는 몸이 된다.

나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있고
지금,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다. 잘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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