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수요일에 청주 서원도서관에 길진숙 선생님 주자 강의를 들으러 갔다.

 

서원도서관은 청주 남부터미널 근처다. 버스 타면 한시간 거리. 강의는 아침에 10시에 시작하고, 새벽 6:40차를 놓치면 다음 차가 10:25분이라서 첫차 놓치면 강의를 들을 수가 없다! 전날 밤에 알람맞추고 옷이랑 가방 챙기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잔뜩 긴장하고 잠들었다.

 

새벽 6시 알람소리. 0.5초만에 퍼뜩 깼다. "성공이다! 이제 일어나야지!" 하고 고양이처럼 웅크렸다가 눈떠보니 8시다 ㅠ_ㅠ 일어나야 할 마지막 순간에 방심했다. 조금만 더 눈 감고 있다가 5분 안에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차는 놓쳤지만 강의는 듣고 싶다. 아직 안늦었다. 어제 "이기적이기 위해서 이타적으로 사는" 장자 강의 내용을 떠올린다. 남편과 잘 소통하면 나는 어쩌면 강의를 들으러 갈 수도 있사오니. 어린이집에 애들을 보내고, 남편과 전날까지도 없던 소통을 시도한다. 상냥하게 얘기한다.

 

"길진숙 선생님이 서원도서관에서도 강의하신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데, 들으러 가고 싶어. 요새 마션 재밌다던데? 나 도서관에 떨어뜨려주고 당신은 영화 보는거 어때? 도서관에서 영화관 되게 가까워. 청주북문CGV까지 3.5km더라?"

 

+

 

서원도서관 :-D

 

 

살금살금 빈자리 찾아 들어오는데 귀에 꽂히는 카랑카랑한 길샘 목소리. 너무 반갑다 ㅠ_ㅠ

 

이렇게 큰 강의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솔멩이골에서는 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랑도 한사람씩 눈 마주치면서, 길샘은 강의하신다. 차광주샘도, 고병권샘도, 박정수샘도, 문성환샘도, 윤태영샘도, 백승권샘도, 아주 많은 사람들 앞에서나 아주 적은 사람들 앞에서나 다름없이 열정을 다 쏟아 전해준다. 내가 있는 자리는 얼마나 호사인가. 더 작고 더 가까운 시공간에서 배운다. 스승을 만난다. 사람을 만난다. 소비하듯이 듣고 나서 끝이 아니라, 배움과 삶과 관계가 함께 온다. 내게 한순간 한순간 모두 굉장한 호사다.

 

 

 

 

 

자료집도 얻었다. 얏호 >_< 찬찬히 읽어봐야지!

 

 

+

 

강의 중에 뜨끔한 부분들.

 

1. 기억해서 써라

 

주희가 제자들과 공부할 때 필기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서 기억해내서 써라" 했단다. 제자들은 그 시간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들었을까. 얼마나 머릿속으로 더듬고 더듬어 깨달은 상황을 떠올리려고 애썼을까. 써낼 수 있는 만큼이 내 것이겠다. 나도 즉시 후기 쓰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지.

 

2. 유머

 

어이없는 이유로 모함을 받아서 관직이 파면되고 유배되고, 탄압받고, 죽을때까지 유배가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탄압이 심해져서 제자들이 다 떠나고 한두명만 남았다고. 그래도 서원의 문을 닫지 않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유머는 커녕 말이 안나올 상황에서도 유머를 +_+ 유머를 한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 15분 여유도 없는가

 

가난 때문에 학문에 전념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이 말했다.

 "그것은 상관없다. 세상에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루 24시간, 언제 여유가 있는지를 보고 두 시간 여유가 있으면 두 시간을 공부하고 15분 여유가 있으면 15분을 공부하면 된다. 이런 노력을 오래도록 지속하다 보면 자연히 달라진다."

 

하루에 15분 책 읽을 여유도 없겠나. 15분 일기 쓸 여유도 없겠나. 15분 기타 칠 여유도 없겠나. 15분씩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겠다;;;; 일단 하자!

 

 

+

 

 

강의 마치고 나서 인문독서아카데미 수료식을 시작한다. 장장 20주 과정이 오늘 끝난거라고 한다. 길샘은 맨 앞자리. 저 먼 곳에 계신 분. '사람 많아서 나 못보셨겠지? 수료식 마치고 아마 도서관 사람들이랑 점심식사하러 가시겠지?' 하고 내빈 소개가 한참일 때 살짝 나왔다. 3층 열람식이랑 2층 어린이열람실을 둘러보고 (도서관 탐색병 = 직업병이 더해진 지병) 1층 로비를 빠져나오는데, 핸드폰이 지잉 지잉. 화면을 보면서 내 가슴도 지잉 지잉 ㅠㅠ 길샘 전화다.

 

"어디에요? 해인네 같이 가서 밥먹어요!"

 

 

+

 

길샘 차타러 도서관 뒷뜰에 나가자 마자 장금샘, 지희샘을 만났다.

 

"아! 얼굴 보니까 알겠어요. 우리 같이 공부했죠-"

 

+

 

길샘이랑 장금샘이랑 지희샘이랑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해인네에 도착했다. 이동하면서 잠깐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도 참 좋았다 ㅠㅠ

 

해인네는 청주에 있는 인문공부방이다. 아이들이랑 엄마들이 같이 밥을 해서 먹고, 같이 공부한다. 솔멩이골 작은도서관의 어떤 시절의 다른 버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 ^^. 여기 아이들은 낭송을 무척 잘한다.

 

널찍하고 탁 트인 거실에 검은 어쿠스틱 피아노가 있고, 방이 세 개인데 한 방은 사무실, 두 방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방이다. 거실에도 방에도 책장에 책이 가득하다. 부엌도 널찍하다. 밥먹고 공부하고 잠도 잘 수 있는 엄청난 곳이다. 넘넘 맛있는 밥 먹고, 인사하고, 해인네 얘기 듣고, 솔멩이골 얘기도 하고, 해숙샘이랑 얘기하다 뭔가 자매결연 같은 것이 즉석에서 맺어졌다 ㅋㅋ 언젠가 솔멩이골 아이들이 해인네 가서 하룻밤 자고, 해인네 아이들이 솔멩이골에 와서 물놀이 하는 날이 오려나.

 

+

 

내 사주. 2018년에 대운이 바뀐다. 비겁이 들어오니 스스로 서고 싶고, 자수라서 크게 확 달라질거라고 장금샘이 읽어줬다.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D

 

+

 

"다음 주에 또 보자"고 (뭉클), "다음에 또 보자"고, "공부하면서 또 만나자"고 하면서, 웃으면서 헤어졌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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