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샘 강의 들으러 남산강학원 가기 전날 집을 치웠다. "공부도, 생활도 무게중심 잘 잡으라"는 스 스승님 이야기가, 날이 갈수록 움직이라고 마음을 크게 울리고 등을 떠밀기도 했던 터. 생활에서 제일 맘에 걸리는 부분이 청소다. 방학과 주말을 마치고 애들이 어린이집에 간 월요일에 바로 시작했다.

평소에는 유지보수 수준이었다면 요번엔 아주 작정을 하고 '구조 개선 + 대청소'에 들어갔다. 당연히 틈틈히 불쑥불쑥 멘붕이 왔다.

'나가고 싶다!
벌컥 문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
다른 일 하고 싶다!'

'참자. 오늘만 참자.
오늘은 다른거 안하고 정리만 하는 거야.'

마침 어린이집 마치고 애들이 할머니네 놀러갔다. 밤까지 계속 정리했다. 요령은 없어도, 아침부터 밤에 자기 전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들여서 치우니까 집이 정말 정말 깨끗해졌다. 너무 깨끗하니 애들도 남편도 감히 많이 어지르지 못한다 ^^

+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평소처럼 내가 없는 시간동안 애도 어른도 어지르기만 하고 손도 안댄 채로 있을까. 자기가 어지른 건 자기가 치웠을까.

'뭘 기대해. 또 어질러져 있겠지.'
'하아... ㅠㅠ'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부터 난다.
생각이 스트레스를 부르누나.

'만고에 내 기대~ 만고에 내 기대~'

선교온니 말로 얼른 한숨을 긍정으로 바꾼다.

"잘했어! 또 어질러져도, 다음에 치울 때는 한시간 덜 걸릴꺼야."

집은 또 어질러져 있어도, 나는 배우고 왔다. 또 치우고 배우러 갔다 올꺼다. 그럼 됐지 :-D

+

멀리 나와있어도 여지없이 얼른 돌아가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일까? 아마 깨끗하고, 따뜻한 집이겠지?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집이고. 내 자리가 있는 집이겠고.
그런 집을 내가 만들고, 나도 돌아가야지. 내 손으로 상황을 다르게 만들어야지.

담주에는 선교언니가 일러준 대로, 반찬도 다 해놓고 나올테다.

+

어제 곰샘 강의 중에 맘에 남는 말.

"우주는 울퉁불퉁해요.
삶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라,
살아볼 만 해요."

+

일하느라 수고 많은 노트북은 용산 AS센터 가서 F키를 고쳐주고, 내 마음을 가꾸는데 쓰는 아이폰4한테는 꼬질꼬질해진 헌 케이스 대신 라벤더 색 새 케이스를 선물로 입혀주었다 :-D

싹싹 주방 닦을 부직포 행주랑, 오븐요리를 다시 시작할 종이호일이랑, 어린이들 (일년에 한번 먹는 그 좋아하는) 파인애플이랑 쌀과자랑 또봇 스케치북, 남편 좋아하는 수입캔맥주도 샀다.

+

남편이 나를 기쁘게 하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시간을 들여 추억 쌓기에 관심 없다고, 이제 우리 사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제서야 나는 뭘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가족 말고 내 곁에 소중한 관계를, 인문학의 힘을 얻어 다시 보았다. 남편한테뿐만이 아니어도 나는 무척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렇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그게 마치 인생과 사랑의 전부인 것처럼 안달복달 했을까.

지금은 내가, 가족 뿐 아니라, 가까이에서 마음 닿은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움직이고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좋다. 많은 돈 많은 시간 대단히 어려운 노력이 아니어도, 그저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마음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주아주 많고, 소소하게 하나씩 해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

자극이 온 말.

"삶은 활동과 관계다."
"오늘 움직인만큼 행복하다."
"생각이 쌓이지 않으려면 움직여라."
"순환하고 있는가?"

활동과 관계, 순환과 창조.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생명주권.


+

집에 오니 역시나다.
내가 나간 후에 어지르기만 하고 안치웠다.

'나의 정기신을 소모시키는 남자들. 하. -_-..
참고 치우고, 이게 다 뭔 소용이야.
나만 축나는 짓을.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잠시, 울분이 팍 치솟는다.
이대로면 늘 내리는 결론으로 마무리 할테지.

배운대로 생각도 몸도 바꿔 이 상황을 헤쳐나가자.

얼른 행동으로 순환해야지!
멘탈 잠시 내려놓고 후다닥 치우세!


+

다 치웠다.
시간도 조금 덜 걸렸고, 더 버렸다.
원래 하던 청소를 다 마치고 나서 20분동안 더 내다버린 것이 공간을 훤하게 했다.
내게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20분이 날마다 모이고 모이면, 다시는 안어질러지겠지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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