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에 조선 후기 사대부 이야기랑 연암 박지원과 우정의 네트워크 강의를 너무너무 재미있게 듣고 나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괴산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할 때마다 늘 대출중이었는데, 요번에 제대로 빌렸다 :-D

 

이 책은 이덕무가 직접 말하는 것 처럼 써있다. 이덕무와 우정을 나누는 벗의 외모, 성격, 형편, 성격에서 나오는 고민, 고민에서 나오는 저서, 함께 나누는 대화, 함께 살아가는 삶과 죽음까지를 이덕무의 입으로 듣는다. 마치 내가 이덕무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이덕무가 보는 것 처럼 벗과 스승을 본다. 자세하고 생생해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이 숨결이 느껴진다. 어려운 말이 없고 술술 읽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다 벗을 얻은 것 같이 애틋하고, 인생을 한바퀴 산 것 같다. 뭉클뭉클.

 

가난한 나날에 괴롭고 외롭고 배고프고 추운 것을 덜어주는 책읽기를 하는 이덕무. 글상자에 소중한 글을 써서 모으고, 조선의 역사에 관심을 쏟은 유득공. 실 생활에 쓰이는 기술에 관심 많았던, 시대를 앞서간 박제가. 무예의 길과 평화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벗들을 떠나 식구들과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했던 백동수. 책으로 잘 통하는 어린 벗 이서구. 음악과 과학이라는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학문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중국 선비들과 깊은 우정을 나눈, 스승 홍대용. 이덕무의 시는 옛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남의 것을 빌려오지 않은 조선의 노래라고 알아준, 네살 위 스승 박지원. 이 백탑파를 알아주어 직책을 맡기고 책을 내게 한 정조까지. 

 

옛날 사람도 오늘 만나는 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했고, 있는 힘껏 치열하게 살았구나. 한다. 그 치열한 삶을 끝까지 가져간 힘은 어쩌면 벗이었겠구나, 한다.

 

 

"붕우유신이라,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륜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한자리를 내어 주는 것은 오직 이 항목뿐이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곳에서도 우리가 마음 편히 있을 자리는 없었다. 우리가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뿐이었다."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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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에게 위태로운 매력을 발견! 박제가의 배경과 여러 일화를 소개하면서 상상의 이덕무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벗들 가운데 박제가의 성격이 가장 강파르고, 깎아지른 절벽처럼 위태로웠다" - p.69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답답한 처지와 현실세계. 그 속에서 박제가는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고, 세밀하게 글을 썼다. 수레, 배, 성벽, 앞선 농업 기술, 다른 나라와의 무역은 당시 사회에서는 너무 새롭고 앞서가서 꿈도 못꾸는 것이었지만, 박제가에게는 이미 지금으로 와 있는 삶이었고, 다른 이의 삶에도 선물이 되도록, 글을 썼다.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썼다. 오랑캐 괴수라고 남들이 놀리든 말든, 깬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을 쓰는 것 뿐이었겠다 싶어서,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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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인물톡톡 : 나의 친구, 나의 스승" 책에 혹시 백탑파가 있나 훑어봤다. 고전톡톡도 인물톡톡도 신기한 책이다. 아는 만큼 다시 보인다. 안보이던 목차가 눈에 보이고, 와닿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와닿는다.

 

왁, 박제가가 있다!! "북학의 기수, 박제가 : 그에게 조선은 너무 갑갑갑한 땅이었다"

다 읽고 나니 길진숙 선생님 이름이. 너무 좋다. 세쪽이 조금 넘는 쪽수만으로도 나는 박제가의 삶에 콱 반했다 ㅠ_ㅠ 전에 반한 길샘한테도 새로 반하고 ㅠ_ㅠ 연암밴드 한사람 한사람한테 다 반하고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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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마지막 부분에,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의 운명의 소용돌이 이야기와, 백탑파의 뒤를 이은 아들과 손자 이야기에 여운이 남는다.

 

 

"아버지만큼 꼼꼼했던 아들 이광규는, 뒤에 이덕무가 남긴 대부분의 유작들을 모아 다시 <청장관전서>를 엮어 펴내었다. 모두 7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와 유득공의 아들 유본학과 유본예, 박제가의 막내아들 박장암은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검서관으로 일하였다. 이덕무의 병석을 지키던 그의 어린 손자 이규경은 할아버지를 닮아 모든 분야에 걸쳐 박식하였다. 최한기, 김정호 들과 교류하며 저술에 몰두하였다. 이규경의 호는 오주 였는데, 오대양 육대주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학문의 영역도 그처럼 넓어 무려 60여권에 달하는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썼다.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의 뒤를 이은 방대한 저서이다.

 

유득공의 회고시를 외우던 그의 아들 유본학과 유본예는 검서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둘째 아들 유본예는, 조선시대 서울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한 <한경지략>을 썼는데, 아버지 유득공이서울의 세시풍습을 기록한 <경도잡지>의 뒤를 잇는 것이다.

 

박지원이 중국 열하로 떠나던 해에 태어난 그의 둘째 아들 박종채는, 1816년에 아버지 연암의 일생을 기록한 <과정록>을 썼다. 연암이 세상을 뜬 지 이태 뒤에 태어난 손자 박규수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연암이 남긴 문집을 통해 실학사상에 눈을 뜨게 된다. 박규수는 쇄국과 개방의 격렬한 흐름 속에 헌종과 철종, 고종까지 거쳐 오랫동안 조정의 고위 관리를 지냈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가까이에서 목격하면서, 조선에서도 개혁과 개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박규수의 서울 재동 집 가까이에는, 훗날 개화사상을 토대로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고자 정변을 일으키는 김옥균과 홍영식, 박영효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스승 박규수와 함께 <연암집>을 읽으며,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문명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드나들던 할아버지 연암의 사랑방이 그랬듯이 재동에 있는 박규수의 사랑방에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젊은이들로 늘 붐볐다."

 

+

 

한결이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엄마는 공부하는거 좋아하지? 나도 공부하는게 좋아. 엄마 혹시 알고 있었어? 내가 공부 좋아하는거. 나도 엄마랑 같이 공부할래."

 

뭘 봤다고 엄마가 공부를 좋아하는 걸 아는지 :-D 웃겨죽겠다. 나는 이 사람들처럼, 앎이 삶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나도 내 아이들도 앎이 삶이 되는 공부를 하고, 공부가 닮은 친구들이랑 우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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