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있으니, 영화 볼 벗님은 읽지 마세요.
완전 스포 만발이에요.
내 맘대로 막 막 쓴 쓰잘데기 없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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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영화다. 엄청난 남자 영화다. 그런데 섬세하다. 감독이 남자다. 섬세함은 남자 세계의 동물같은 위계질서와 수컷 탐색, 응징, 생존방식을 그리는 부분에 많은 정성을 들이는 것에서 보인다. 덕분에 남자의 세계와 남자를 이해하면서, 영화 속의 행동과 말이 어떤 의미인지, 선택과 결론이 왜 저렇게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남자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약점은 추락으로 이어지고, 추락은 추방으로 이어진다. 발 붙이고 서있기도 아슬아슬한 세계. 남자의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감정은 약점이 되고, 개인의 질서와 속한 세계의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것임을, 본다. 진짜 마음을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진짜 마음가는대로 살기 시작하면 추락하고 추방당할 것 같은,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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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길은 한쪽 팔이나 다리만 못쓰게 되고 감옥에서 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심장에 총을 맞고 죽어야했을까.

이사장의 여자와 눈이 맞고, 여자를 협박하는 조직원을 죽였다. 알아보니 인성은 괜찮은 평가를 받고, 싸워보니 육체 능력도 훌륭하다. 재곤은 여기까지의 준길을, 일단 인정.

그러나 알고보니. 여자를 팔아 도박하고, 도박판에서 날려서 돈을 다 날린다. 안그래도 빚때문에 힘든 여자에게 돈을 구해달라고 한다. 준길을 둘러싼 남자들은 준길의 다음 걸음을 빤히 안다. 궁지에 몰린 변변치 않은 수컷이 선택하는 장소와 행동을.

비록 여자의 알몸을 다른 남자가 보지 못하게 이불을 덮어줬다 해도, 둘 이상 모이면 배신한다고 아무도 안믿으면서 혜경이 있는 곳에는 돌아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여자가 다치지 않게 감쌌더라도, 그 밖의 다른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려는 선택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여자는 다 알면서도 기다리고 다 내어준다고 해도,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해도. 살려둬봤자 위계질서를 어지럽히고 여자 돈이나 뜯을 약한 남자는, 남자의 세계에서 용납하지 않는가보다. "빵-" 영원히 추방.

맨 처음. 눈맞은 것 부터가 약점을 드러낸 것이었다. 조직원을 죽인 것은 추락의 시작. "뻔하지 뭐 여자 하나에 얽혀서.." 하는 사건 설명이 말해준다. 사실, 도박은 그냥 준길을 변변치 않게 보이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준길은 감정대로 살아서, 약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약점을 드러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약점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자기 삶을 살지 못해서 죽은 것이 아닐까. 왜그랬을까. 절망감에 눈이 어두워져서일까. 혜경을 맡기고 받은 돈으로 둘이 얼른 해외로라도 튀어버리지.


완전 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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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곤.

남자의 진심을 알려고 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읽어줄지니.

소주한병을 아주머니 대신 가져다주는 속에, 마주앉아 함께 술 마셔주는 속에, 차 태워주겠다는 제안 속에, 번듯한 미용실에 데려가서 머리하게 해주는 속에, 혜경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적을 향해 날리는 가시돋힌 눈빛과 말 속에, 집까지 바래다주고 여자 집에 들어간지 오래라고 언제 들어가게 해 달라는 농담같은 말 속에, 생활비를 가져다주고 가끔 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속에, 술마시고 집 앞에 앉아 밤새도록 하염없이 기다리는 속에, 우는 얼굴을 쓰다듬고 키스하고 안아주는 속에, 슬쩍 두고 도망가는 귀걸이 선물 속에, 진짜 마음을 던져놓고 진짜냐고 물어보면 "그걸 믿어?" 하고 흐려버리는 말 속에, 비맞으면서 서있는 속에, 진짜 이름을 말하는 속에, 집요하게 주변을 맴도는 속에. 말 하고픈 마음이 다 들어 있다.

말로 하지 못해도, 그 행동 하나하나에 전부 마음이 들어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말로 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안믿고 마음에서 밀어내지 않으면 좋겠다. 원하는 미래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지금 곁에 있는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결하러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를 믿어주면 좋겠다.

내가 남자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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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

"영업실장 어디있어?"
"영업실장 어디갔어?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

재곤이 없는 걸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다가, 딱 한번 전화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혜경은 모텔에서 일 치르고 나오는 길. 재곤은 도박장 앞에서 준길이가 나오는지 지켜보느라 잠복해있는 중. 어슴푸레한 새벽이다. 서로 무얼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네. 이따 점심때 만나요." 하고, 언제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하루하루 중에, 조금 있으면 만날 약속을 한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잠시 웃는다.

거짓말. 어긋남. 끌림. 외로움. 무거운 삶.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관계에 엉켜있다. 그래도 전화하고 있는 나의 '지금'과 당신의 '지금'은 연결되어 있다. 기댈 곳 없는 서로를 한순간 연결해 주는 통화.

그 장면이 떠올라서 자꾸 마음이 아프다.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하는 마음.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끊지만, 큰 용기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뒤에 앉은 형사들과 있는 시공간에서는 놀림감이다. 관계맺기는 가짜여야 한다. 일하면서 종종 쓰는 수단중에 하나다. 사람도, 관계도, 돼지 발정제가 등장하는 우스갯소리가 되어 버린다.


+


어쨌든, 살아가자.
정신차리고 살고 있으면, 다음 기회가 온다. 끝까지 마음을 입밖으로 내놓지 않는 재곤은 살아남지 않을까. 혜경도 자기를 놓아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랑하기 위한 태도라 할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이라고 할까,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예의라고 할까. 외로움을 끌어 안고, 자기를 해롭게 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날 것의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이겠다. 현실은 자꾸만 시궁창같은 곳에 굴러떨어져도 내가 시궁창이 아니면 된다. 평행선 같아도 반드시 접점이 생긴다. 그 접점에서 대화는 또 평행선 같더라도, 그 대화를 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둘이 있는 힘껏 살아왔기에 받은 운명의 선물이다. 그러니, 부디 잘 지내달라.
그렇게 살 거라는 종잇장같은 믿음이, 둘 사이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자를 알아주고, 남자의 세계를 알아주고, 말로 다 못하는 진짜 마음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외로움을 서로 다독여주면, 같이 사이좋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일단 내가 씩씩하게 살아가야지. 나도 내 삶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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