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이야기"



대학교 3학년. 정유성 교수님의 "성과 사랑" 수업을 들으면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연극을 단체관람했다.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 교수님이랑 친분이 있어, 뒷풀이 자리에서 무려 김형경 작가도 만났다. 배우들도 같이 +_+

책으로 읽을 때는 정신과 의사가 배우 김태우 같은 이미지여서, 어떤 배우를 만날까 궁금궁금 두근거리면서 갔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역을 많이 맡는 중년 배우가 맡았다. 대사와 감정흐름이 사람이랑 따로 놀아서 주인공 세진을 따라가는 감정이입이 잘 안됐다. 몰입이 어려웠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역시 이미지만큼 가부장적인 성격이 간간히 드러나 대화에 몇번이나 충돌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웃으면서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같이 웃을 수 없는 불편한 느낌에, 나는 그냥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거기에 차분차분 착착, 예리하게, 남배우의 말 속에 박힌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체하던 작가님이 기억난다. 그 순간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게 온 몸으로, 그 이야기를 반사해냈다. 그 때 반했다.

그 김형경 작가가 2013년에 낸 책이다.
그때 그 예리한 해체와 분석을 바로 옆에서 들은 것 처럼, 읽는 내내 작가님이 옆에서 읽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심리학 서적보다 생생하고 술술 잘 읽힌다. 한챕터 한챕터 무척 와닿는다. 내 이야기인가 싶은 부분, 내 안의 남성성과 마주치는 부분도 꽤 있어서 깜짝 놀랐다.

+

어제 장자 강의 들으러 서울 올라가는 차 안에서 거의 다 읽었다. 장자 강의 중에 "물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이야기에서 보는, 존재가 부딪혀 변하는 이야기다. 그 사람의 마음과 몸, 흐름이 되는 것이 물화. 서로가 서로 되기. 나를 버리고 삶의 중력을 내려놓지 않으면 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나비가 되려면 나비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나비처럼 세상을 보는 것 처럼. 이 책을 읽고 나니 남자의 눈으로 세상으로 보고 남자의 움직임과 감정과 말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숙제는 친밀함과 소통.
나와 다른 존재와 어울려 살려면 자꾸 공부를 해야겠다.

"내 운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운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내 운명이 처한 조건들과 싸워라! 다르게 살 수 있는 조건들을 조작하라!"

장자 강의에서 들은 대로 살아봐야지. 나도 그렇게 살고. 남자가 인간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조건들을 스스로 헤쳐나오도록 북돋우는 친구가, 엄마가 되어야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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