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수요일.

밤 열시. 막 잠자리에 들려는 참에 남편이 들어왔다. 오늘도 얼굴이 붉고 눈동자에 힘이 풀려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마음이 덤덤하다.

"어린이들! 아빠랑 같이 자. 엄마는 산책하고 올께-"

잠바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나왔다. 일단 나와서 걸으니까 숨이 쉬어진다.

+

초승달이랬는데 달이 안보인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곧 어둠에 눈이 익는다. 차바퀴가 밟고 다니는 곳만 풀이 나지 않아서 색이 밝은 흙길과, 길 한가운데 나있는 시커먼 풀길을 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을 켜지않고 조심조심 한걸음씩 디디면서 언덕을 쭉 내려와, 삼송 뚝방길 도착. 뒤를 돌아, 산속에 안겨있어 나무만 보이는 우리집 쪽을 바라본다. 가로등이 없어서 일대가 전부 깜깜하다. 비가 온 다음이라 하늘이 맑다. 잔별이 다 보인다.

무심코 쳐다보는데 갑자기
"어-" 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5초동안 소리를 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옆아래로 길게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자자리 위쪽이다! 얼른 시간을 보니 10:10.

+

걷는다.
오늘은 코키아의 노래 "따뜻한 곳(Atatakai Basho)" 한 곡만 무한반복.

"따뜻한 것은 무엇인가요.
따뜻한 곳은 어디인가요.
당신 마음속에."

"아타타카이." 따뜻하다는 말이 좋아서 여러번 따라해본다. 노랫말에 들어있는 감정을 따라다녀본다. 휴, 숨이 쉬어진다.


+


삼송다리를 건너 보리언니네 집쪽으로 가는, 우리집 반대편 뚝방길. 시멘트 포장길이라 평평하다. 갑자기 푹 꺼지는 웅덩이가 없어서 발 내딛는 곳에 신경을 덜 쓴다. 맘놓고 하늘 보면서 걷다가 하천으로 굴러떨어질 뻔;;

갑자기 "어어-!" 5초.
상주쪽으로 걸으면서 고개를 살짝 위로 젖히면 정면에 보이는 하늘. 북쪽왕관자리 아래 헤라클레스자리 위로, 아까같은 긴 모양으로 별똥별이 떨어진다. 시간은 10:54.

진한 남색하늘에 반짝이는 하얀 별이 사르르 지나가는 이 드물고 고귀한 풍경을 나혼자 하루에 두개나 보다니. 집에서 웅크리고 있었으면 볼 일이 없었겠지. 혼자보기 아깝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수많은 시간을 외롭겠다.

+


여기 아이들과 벗들을 다 두고 떠나서 다시 보는 별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겠다. 혼자가 되고 나서 하는 산책은 이렇게 달콤하지 않을 수도 있겠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도 지금처럼 많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일어나도 새하루가 아닌 것 같고,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만난 것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 나는 왜 이 정도로 만족하면서 살 수 없을까. 혼자가 되어서 크게 얻고자 하는 것도 없으면서,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없고 대단한 일을 할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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