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고 어린이들도 잔다. 책을 읽을까 더 치울까 하다가, 노래 목록에 보사노바 음악을 잔뜩 걸어놓고, 살그머니 집을 나섰다.
걷고 싶어서 벼르고 별렀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오늘 걸을 수 있을 때를 놓치지 말고 오늘 걸을 수 있는 만큼 걷자.'
언덕을 내려가서 찻길을 건너서 뚝방길에 접속!
별도 보고, 음악도 듣고, 천천히 걸어가니 마음이 나비날개같이 팔락인다.
갑자기 좋은 향기가 난다. 후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달도 없고 별빛 뿐인 어둠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꽃이 있다. 아카시아다. 아카시아가 피는 때구나. 딱 한가지만 꺾었다. 식탁위에 꽂아야지.
오늘 하루 어린이들에게 짜증내고 화낸 순간을 반성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지.'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지금도 아름다운 내 인생이다.'
흥얼흥얼 콧노래 하면서, 별보면서, 불꺼진 조용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물이 채워진 논을 내려다보면서, 왝왝 우는 개구리 소리 들으면서, 그냥 걷는다.
살그머니 밤산책
2015. 5. 17. 2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