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즐거움 중 하나는

함께 있을 지 아닐 지 알 수 없더라도

가깝거나 먼 미래에 대한 약속을

잔뜩 뿌려놓는 것이 아닐까 한다.

뭘 하고, 뭘 먹고, 어디를 가고, 뭘 읽고 등등.


그렇게 심어놓은 이야기들이

어떤 계기와 마주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공간에서 깨어나

지난 시간을 길어올린다.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 떠오르고

목구멍과 명치끝이 뻐근해진다.


이게 좋은 건지 괴로운 건지

잊히지 않는 건지 잊지 않으려는 건지

잘 구분할 수는 없지만,


어떤 관계와 시간이 분명히 있었고

없던 일이 아니라는 것.

그 앞에 있던 수많은 갈래길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혼자 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같이 있어서 생긴 일들이라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아직 때가 오지 않은 말들이

길가에 핀 꽃처럼 기다리고 있겠고

마주칠 때마다 번번이

좋은지 괴로운지 알 수 없는 뻐근함에 시달리면서

분명히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겠다.


나는 여기에 있고

늘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나갔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오면  (0) 2020.09.19
면샘이 낳은 사과 한알  (0) 2020.09.17
맛있는 커피는 수액과 같아  (2) 2020.08.31
이사 2주차, 소소한 변화  (6) 2020.08.30
야근이 선물한 뜻밖의 컨디션  (2) 2020.07.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