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내 야근했다. 월화수목.
매일 피곤에 쩔어있어야 하는데 꽤 컨디션이 좋아서
이번 주에 어땠는지 써본다.
+
9시 15분을 넘으면
화면이 노랗게 보이고 속이 울렁거려서 어어? 했다.
더 있다간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다, 겁이 나서 접고 퇴근한다.
회사 밖에 나오는 시간은 대략 9시 반에서 10시.
셔틀버스는 애저녁에 가버렸고
시내버스 시간도 안 맞아서
집에 걸어온다. 40분 거리다.
남은 생의 하루를 일에 몰아 넣어버렸으니
아주 맛있는 밥을 먹어서 균형을 잡겠다는 비장함으로
불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뜨거운 물에 씻는다.
+
나 매일 밤 10시 30분에 삼겹살 먹는 사람 ㅋ
삼겹살 김치 양파 대파 숙주 (들기름 필수) 한 냄비가
씻고 나오면 익어 있다.
김치랑 삼겹살은 어쩜 이렇게 물리지도 않고 맛있는지
매일 하루의 끝이 기쁘다.
썰은 배추김치 1.8kg를 5일 만에 다 먹어서 또 주문했다.
밥도 고봉으로 먹는다.
배불렀다 싶을 때 더 먹는 것이
정말 맛있는 것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씻고 개운하겠다, 배부르겠다, 놀다 잘 일만 남으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마구 까불고 싶다 우후후
+
소화 좀 시켜야지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는
졸다가 핸드폰 떨어트리고 마우스 떨어트리고
의자에서 방바닥으로 두어번 굴러 떨어질 뻔 한다.
지금 안 자면 곧 죽을 것 같아서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누우면 바로 잠들어버린다.
한시를 넘길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 새벽 서너시에도 잠이 안 오던 밤이
저 멀리 다른 이의 얘기 같다 :-D
낮에 화장실 자주 가는게 싫어서
커피 안 마시고 결명자차를 마시는 것도 이유인 것 같다.
+
그랬더니
다음날 늦게 먹은 밥 때문에 눈이 약간 붓긴 했지만
일곱시에 눈이 반짝 떠지고 (알람은 일곱시 반)
얼굴이 매끈하며,
결정이 필요한 일에 고민 오래 안 하고 후딱 결정할 수 있고
동시에 네가지 문의가 나를 앙 물어도 대수롭지 않다.
말도 잘 나온다.
왜 말 잘 나오지 =ㅅ=;;;
왜 컨디션 좋지 =ㅅ=;;;;
마음은 일정 압박에 쪼글쪼글한데
몸이 너무 잘 굴러간다.
세상에, 얼마나 상태가 좋은지
일기를 다 쓰고 있다 +_+
+
좋은 상태가 되어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늘 이 정도의 상태로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
+
어떻게 하면 계속 좋은 상태일 수 있을까.
야근 때문에 뭐가 달라진 걸까.
일단, 밥.
밥 양을 늘여서 잘 먹고 있다.
점심도 전보다 밥이랑 반찬을 많이 싼다.
계란후라이도 당연히 한 번에 두개다 ㅋ
점심 저녁에 먹는 양이 늘어나니
계속 계속 생각하면서 자료를 정리해나가는 일에
기운이 딸리질 않는다.
오후 네시에 과자를 밀어넣지 않아도 정서 안정 ㅋ
그 다음은 잠.
곯아 떨어져서 일찍 자니
다음날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네 배쯤 늘어나는 것 같다 +_+
그리고 걷기.
덥다고 안 걷고 있다가 시원한 밤에 다시 걸으니
걷는 내내 걷고 있는 자체가 즐겁다 :-D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다음 날 회복한 몸이 머금은 에너지의 양과 질도 확 다르다.
내 몸에 흐르는 마나가 느껴진다!
퇴근길에 집에 오면서 8천 걸음 정도 걷는데
전혀 지치지 않는다. 걸은 것 같지도 않다.
밥부터 먹고 나와서 만걸음을 채우고 싶기도 하지만
아니야, 일단 집에 들어가면 끝인 걸 이젠 안다;;
운동한다고 따로 시간내지 않으면서
어쩌다 한번 아니고
날마다 계속 할 수 있는 정도.
평일엔 요만큼이 딱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씻기.
자기 전에 씻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기로 순서를 바꾸었더니
따끈한 물에 닿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의 시즌2가 펼쳐진다.
피곤한 상태로 옷만 갈아입고 누워서
트위터를 보다 밥도 안 먹고 불 켜놓고 잠드는 대신
개운한 몸으로 머슴밥을 먹을 수 있다.
티비에서 왜들 그렇게 어디 밖에만 나갔다 오면
"어서 씻고 와. 밥먹자." 하는 줄 알겠다.
보람찬 여가 시간의 첫 단추는 씻기였던 것이다!
안 하고 싶던 것을 안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계속 실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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