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이 좋아서 옮겨본다.


사실 나는

이 책 서문에서 이야기하는 외국어 책이나 

이 책에서 소개한 외국 고전보다는

아주 최근의 현대소설, 에세이, SF, 사회과학 책을 좋아한다.


나한테 책으로 하는 여행은 시선의 전환에 가깝겠다.

거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일어난 일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그 시선으로 새 세계를 깨우는 것,

그래서 지금보다 나은 시간을 지금으로 가져오는 것,

이런 게 좋다.



책을 느리게 읽는다.

책 한권을, 스케치북, 아이팟과 함께 늘 가지고 다니며

카페에서 읽고

지하철에서 읽고

친구를 기다리며 읽는다.


책 속의 시간은,

영화 속 시간과 다르게

정해진 절대적 시간 속을 흐르지 않고

암흑 속에서 흐르지도 않는다.


생활 속에서,

내가 고른 음악 속에서,

날씨와 

계절 속에서

느릿하게 보조를 맞추어 흐르는

책 속의 시간.


책 속 시간은

현실로 들어오고

읽은 책의 내용 속에는

책을 읽은 순간이 각인되어 있다.


공기와 촉감과 냄새와

그때의 내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이 여행,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라면


특히나 오래 전, 외국에서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은

최대한 멀리,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먼 거리, 긴 시간을 건너 나에게 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원래의 언어를

지금 읽는 단어들 아래 감춘 후에야

마주할 수 있는 책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는 관습들을 상상하고

나에게는 아무런 풍경도,

어떤 구체적인 골목이나 그 안의 사람들도

떠올려지지 않는,

무심하게 쓰인 지명과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 같은

고유명사들을 지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곳을 혼자 헤매는 

여행의 흥분을 느낀다.


그 책들,

내가 사랑하는 책들을

이제부터

이야기.


- <퇴근길엔 카프카를> 서문, 의외의사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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