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112쪽)은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왜 재훈과 매기가 실패했는지를 따져보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

어떤 답을 고르더라도, 그 답이 나름대로 타당한 면이 있겠지만,

그것은 재훈과 매기가 겪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감당하며 자신들의 삶으로 살아내는 대신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탓하며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것을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게 

미뤄버리는 것이 되기 쉽다.


사랑을 통해 겪어낸 그것들을 

다른 누구 다른 무엇에도 미루지 않고 감당하며

우리 삶의 함량을 증가시키는 것, 

그것이 사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랑의 끝에서 재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저마다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의 무게를 가늠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을 오래 지켜보며 재훈은 생각했다.

모두들 그렇게 어떤 무게를 감당하며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고.


그때 재훈이 보는 것은 요리의 재료가 되어줄 당근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감당하려 할 때의 

그 단단하고 묵직한 저항감 그 자체이다.

그 단단하고 묵직한 저항감만이 무언가의 실존을 표현한다.


실존,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감당하느라 얻게 된 함량이며 무게.


"비닐봉지를 묵직하게 누르는 야채의 부피감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당근도 자기 삶을 감당하고 있다고.

(...)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112-113쪽)


내밀하고 독특하며 소통 불가능한 것도 없이 

서로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의 삶이라는 것도, 

실은 저마다의 혼란과 방황으로 겪어낸 

어디에도 미뤄지지 않는 어떤 것을 감당하느라 

단단하고 묵직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실패하는 것이지만, 

사랑에 실패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사랑으로부터 물러서서 

사랑을 잊고 무언가가 사라진 채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는 사랑의 요구에 응답하여 

방황과 혼란의 진폭 속에서 

어디에도 미룰 수 없고 미뤄지지 않는 것을 찾아내고 간직해 

삶의 함량을 증가시켜야 하는 것이다.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 p.143-145, 해설 



소설 다 읽고 나서 뒷부분 해설 읽고, 먹먹해서 적어놓는다.




읽으면서 서늘한 상실감에 목이 따가웠고

다 읽고 나서는 덮어둔 상처가 다 헤집어진 기분이었다.



심지어 당근도 자기 삶을 감당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실존하기로.


미뤄지지 않고 미룰 수도 없는 것을 감당하면서

삶의 함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실패한 사랑에 응답하자고.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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