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나서 업데이트 된 만화를 챙겨본다.

왜 이걸 계속 보고 있을까, 하면서 계속 보는 것도 

여느 때와 같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의식했다.

그러지 않겠다고 한 바로 그것을 지금 하고 있다.

명백하다. 빼도박도 못한다. 

멈칫했다.



+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서사를 흡수하는데

왜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날마다 쓰고 있을까.

이 서사가 나한테 흘러들어와서 일상에 뭘 새로 낳고 있나.


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 즐거워할 수도 있는데

왜 내 삶의 서사를 만드는 데는 

시간도 체력도 자원도 이렇게 인색하게 쓰고 있을까.


이제부터는 생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 즐거워하자, 했다.



+



18시간 전에 써서 낸 에세이 숙제가

각성의 계기다.


정지돈 작가님이랑 같이하는 <궁극의 에세이 쓰기> 수업을 신청하면서 쓴 건데,

알고보니 접수 마감을 넘겨서 

내 글은 보내기도 전에 합격자 발표가 났다고 한다 ㅋ


쓰기 전에는 모른 척 할 수 있었는데

쓰고 나니까 모른 척 하던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다.

쓰고 나서 처음 돌아온 저녁부터 바로 실전 +_+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발을 빼려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비록 게임은 시작 전에 끝이고,

말도 안 되게 부끄럽고 비루한 것을 썼지만,

쓰고 나서 그 글부터 나는 새로 시작이다.

이게 너무 좋아.


아마 이번에도 잠시 반짝 의식하고 곧바로 잊을 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잊는다.

그리고 또 새로 시작한다 ㅋ 수십번 새로 계획을 세운다.



씻고, 결명자차 한주전자 끓이고, 도시락 싸놓고, 할일 목록 적어놓고, 바로 잤다.

한숨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오늘을 이렇게.



+




숙제글 다섯꼭지 중에서 세번째 것.



3. 프로짝사랑러의 설렘 관리

 

하루의 기초대사량 에너지원을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채우는 것처럼, 하루에 쓰는 감정에도 기초대사량 에너지원이 있다면 나는 주로 설렘을 채워서 쓴다. 왜 이 만화의 서브남주를 응원하는 댓글을 절절하게 달고 있지, 왜 아이돌을 바꿔가면서 직캠무대를 훑고 있지, 일상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들여가며 중요한 것 놔두고 먼저 하는 일들을 가만 보니 그날의 설렘을 그날 채우려고 하는 짓이다.

청소나 일찍 자기에도 설레면 좋을 텐데. 책 살 때만 설레지 말고 산 책을 읽는 것도 설레면 좋을 텐데. 설렘도 관리가 필요하다. 쉽고 빠르게 채울 수 있는 종류의 설렘도 종종 요긴하지만, 꾸준하고 성실해야 채울 수 있는 어렵고 느린 설렘까지 골고루 발굴해서 채우는 것이 프로짝사랑러의 자기 설렘 관리라 할 수 있겠다. 우정과 동료애, 생활체력을 기르는 운동, 일기쓰기, 피아노, 비혼여성 내집마련을 위한 미니멀리즘과 자산축적, 읽을 책 목록 읽어가기 등등 설렐 것이 줄지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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