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50분쯤. 책상에 앉아있는데, 베란다에 펼쳐놓은 빨래건조대가 쇠끼리 덜덜덜 마주치면서 떨리고, 베란다 창틀이랑 의자랑 책상이 다 흔들거렸다. 지진이다. 괴산에서도 몇 번 겪어본, 흔들리는 놀이기구 타고 있는 느낌이다.

'제법 크게 흔들리네' 했더니, 몇 분 후에 또 흔들린다. 두번째는 꽤 오래간다. '아직도네.' .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거지?'

'이러다 아파트 무너지는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문득. 11월부터 이사 나가라 하고 곧 부술지도 모르는 오래된 아파트니, 그런 상황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서 재빨리 나가자. 뭘 가지고 나가나?' 하다가, 중요한게 너무 많고 무거워서 멈칫;; 책들;;;

'무너지고 있으면 피할 수는 있나?'
못피하겠지. 그럼 뭘 가져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소용없다. 

다행히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행히 원전도 터지지 않았다. 월성 원전 1-4호는 90번을 넘는 여진이 밀려드는 가운데 운전을 수동으로 멈추었다고 한다. 집이나 책이나 혼자 있는게 무슨 문제인가. 원전이 문제다. 월성뿐만 아니라 고리원전이랑 전부 멈춰야 되는거 아닌가?


아무튼, 하루는 더 살아도 되나보다.


+


오늘까지로 충분하다, 됐다, 하고
언제든 홀가분하게 갈 수 있게 잘살아야지.
너무 애쓰지 말고 하는 만큼만 하면서.


느닷없는 최후의 순간에
내 옆에는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냥 지금처럼.


그러니까 언젠가 종말이 닥친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는... 

그런 따뜻한 그림은 당분간 내 현실이 아니라는 것.

당분간인데, 기약이 없다. 기약없는 당분간이다.

그걸 똑바로 봐야 상실감에 휘청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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