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철썩 맨살을 내려치는 것처럼 그가 버럭 소리지를 때 마다, 눈동자 바깥에서 눈꼬리 안쪽 사이에 매달려있는 투명하고 얇고 동그란 물주머니가 펑 터지는 것 같다. 눈 앞이 아득해지면서 몸 어디에선가 물이 새어 나가는 것 같다. 턱 아래 임파선에도 기관지에도 심장에도 폐에도 위에도 장에도 겨드랑이 아래에도 자궁에도 신장에도, 곳곳에 금이 가고 물이 샌다. 심장박동 리듬에 맞춰 모든 틈새에서 찔끔찔끔 왈칵왈칵.

그래서 다행이다. 이제 세상을 돌고 있는 여러가지 여러색깔의 소리를 만나러 간다. 내 몸을 통과해서 예쁜 파형을 그리고 가는 소리를 만날 수도 있겠지. 줄줄 새는 구멍이 너무 많아서 다행인건, 털끄트머리만큼 아물어가는 변화까지 읽어내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 생명을 살리는 소리가 어떤 음인지 어떤 색인지 골라낼 수 있겠다. 물새는 구멍을 내는 소리와 구멍을 아물게 하는 소리의 차이만큼이, 바꿔낸 운명이겠다. 내 운명대로 살 수 있게 바꿔낸 조건이겠다.


+

그러고는 다시 돌아본다.
남편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거리를 이제야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혹은, 이제야 원래 그랬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는게 아닐까. 이 사람의 좋은 점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관계. 떨어져 있으면서 간간히 농사며 공동체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가까이 있어도 좋을 줄 알았는데, 가까워진 순간부터 많이 울고 많이 아팠다.

가까워진다고 누구나 다 상처를 주고받는 건 아니겠지만, 최적의 거리를 알아가는 과정에 좀 더 시간과 정성을 차곡차곡 쏟았다면 좋았을 텐데.

마음 가는대로 속도를 낸 벌은, 우리가 함께 살 수 없다는 걸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깨닫고 관계가 무너진 채 하루하루가 되풀이 되는 것으로 되돌려받았다. 그 시간을 참고 견뎌서 받은 가장 큰 상은 우리 아이들이다. 벌을 받는 것 같은 하루, 이 벌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에도, 상은 늘 가까이에 있었고 순간 순간 새로웠다.


이사가 이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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