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고 싶은데 해뜨고 밝아버려서 95% 잠 속에 있는 아침 8시다. 엊저녁 글쓰기 공개강좌 뒷풀이를 마치고 새벽 네시에 들어온 터.

온유는 눈 뜨자마자 그림책을 가져와서 내 뺨에다 꾹꾹 누르면서 들이민다.

"이 책 읽어 줘!"

모서리로 또 내려찍을까봐 겁난다. 던질까봐 무섭다. 잠이 85%상태로 급하게 떨어진다. 책이 날아오면 막을 수 있을 정도까지 정신을 차리고, 또박또박 말을 한다.

"온유야 엄마 좀 더 잘래.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서 읽어줄께-"
"읽어주라고오! 왜 안읽어줘어!"

엄마가 더 말이 없자, 책을 옆에 휙 던져놓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바앙 구우~ 방구~~"

온유는 요새 모든 질문에 "방~구~" 하고 대답하는 놀이에 폭 빠져있다. "반~두~" 하고 혀짧은 발음을 하던게 불과 한달 전인데 그동안 또 컸다.

엄마 일어나라고 얼굴부벼대는 것도 많은 말 필요없이 "방~구~" 하나로 다 통한다. 그러면서 방구가스가 가만있는 콧구멍을 파고드는 것 처럼, 옆으로 누워있는 내 팔이랑 팔 사이 가슴팍에 머리통을 들이밀면서 파고 든다.

한결이가 이걸 보고는 "엄마는 내꺼야! 엄마는 내꺼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똑같이 머리통을 디밀고 품을 파고든다. 두놈이 다 영락없이 괴성지르면서 감자밭을 들쑤시는 새끼 멧돼지다!

맥없는 내 팔을 한쪽씩 나눠잡고 팔베게를 하고 서로를 발로 차댄다. 나는 잠에 취해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다. 붙잡힌 양팔도 휘둘리고 몸통도 발길질에 걸려 얻어맞는다.

애들 다리는 단지 크기만 작을 뿐이다. 날마다 날마다 시골길을 뛰어다니는 이 새카맣고 단단한 근육질 다리통이 엄마를 사정없이 걷어차는 힘은, 야생 멧돼지의 영혼에서 솟아나는 커다란 것이다.


그래도 안일어나니까 온유가 다다다 도움닫기해서 달려와 내 얼굴에 철푸덕 하고 뛰어들어 앉는다.깔린 눈에 불이 번쩍 튄다. 얼얼하고 숨이 턱 막힌다.

야단칠 힘이 없다.
주말이 지나기도 전에 목은 이미 다 잠겨버려서
소리를 크게 지를 수도 없다.
울음이 펑 나온다.

"엄마 조금만 더 자고 싶다고 했잖아. 왜 엄마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아. 흑흑 흑흐윽 흑흑흑 허어엉...."


던지는 책 맞을까봐 무서워서 정신들고, 얼굴에다 대놓고 크게 지르는 소리를 계속 듣고, 사지를 붙잡혀서 휘둘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근육질 다리에 걷어차이고, 날벼락같이 쏟아진 엉덩이에 깔려 눈에 번쩍 불이 튀고... 어쩌다 애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것 뿐인데, 비몽사몽에 수난도 이런 수난이 없다.

엄마가 마치 인생을 후회하는 것처럼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듣고, 한결이는 뭔가 이러면 안되겠다는걸 퍼뜩 느꼈나보다. 얼른 "온유야 우리 거실에 나가자!" 하면서 온유를 후르르 몰고 나간다. 나는 돌아누워서 더 울다가, 한결이가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내고 씻어서 과일칼을 들고 사각사각 써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딱 5분 더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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