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이 어금니를 야금이 벌레가 먹어서, 청주 가경동 터미널 근처 어린이 치과에 다녀왔다. 그 김에 겸사겸사 산부인과도 다녀왔다.
피곤하면 약한 부분으로 티가 난다. 어떤 사람은 눈다래끼가 나고, 어떤 사람은 입술에 물집이 잡히는 것처럼, 나는 20대에 회사다닐 때 생식기 근처 점막에 뾰루지가 났다. 하필이면 왜 거기 ㅠㅠ
아가씨 때는 뭘 잘 몰라서 산부인과는 갈 생각도 못하고 혼자 아파하고 고생고생했다. 대략 아물긴 했는데 흉터가 티눈처럼 직경 5mm 정도로 동그랗게 뭉쳐서 남아있다. 그러니까, 오래된 흉터다. 사는데 별 불편함은 없지만 가끔 피곤하면 그 근처가 약간 욱신거린다. 요새 그런다. 그래서 온 김에 산부인과에 갔다.
+
남자 선생님이다. 부끄러워지려고 한다.
'부끄럽고 자시고 하면 나을 수가 없지. 그러려니! 그러려니!'
그러니까, 의사샘의 눈을 보면서 내 몸 이야기를 제대로 똑바로 할 수가 있다.
+
진찰실. 생각은 안부끄러우려고 해도, 진찰 의자에 앉으면 다리를 여는 자세에 저절로 부끄러워진다. 보이는 나도 부끄럽지만 보는 선생님도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이 부끄러웠을까. 의사선생님이 무심히 봐주는 덕분에 나는 나을 수 있다.
의사선생님은 자세하고, 친절하다. "자주 보는 종류가 아닌데요. 떼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다. 고주파로 뗀단다. 간단히 뗄 수 있을거라고 나도 의사 선생님도 생각했다.
바로 수술실이다. 나랑 간호사샘만 있다. 나는 다리를 열어 누워있고, 초록색 수술보자기 커텐이 허리 아래와 허리 위를 나누고 있어서 저편이 안보이고, 간호사 샘은 수술부위에 마취크림을 발라주고, 조용조용하게 음악을 틀어주고, 수술을 준비한다.
"고주파는 뭐에요? 레이저같은 거에요?"
"레이저랑은 좀 다른데, 아래에 난 사마귀같은 거 뗄 때 쓰는 거에요."
"와, 거기에 사마귀도 다 나요?"
"그럼요. 많이들 나요."
"저만 이런거 난게 아니군요. 위로가 되네요!"
의사샘이 들어오고, 드디어 수술 시작이다. 흉터가 꼬집히고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난다. 마취 크림을 발랐으면 안아파야 하는데, 너무 아프다.
"으아아아아, 너무 아파요!"
"마취하는 거에요. 여기가 좀 아픈 곳이죠."
아하. 마취크림은 마취주사를 맞을 때 좀 덜 아프라고 바르는가보다. 주사를 맞고 나서는 하나도 아프다. 사실 마취주사도 그렇게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 아프다고 호들갑 떨어서 죄송해요."
지지직, 하는 느낌이 잠깐 들었다. 끝난 줄 알았다. 그 다음은 꾹꾹 눌러주는 느낌이 있고, 아래로 뭔가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 난다. 또 꾹 하고 한참을 그대로 누르고 있다. 닦고, 꾹꾹 눌렀다 닦고 한다. 한참 더 있었다. 선생님이 커튼 이쪽편으로 넘어와서, 누워있는 나와 눈을 맞추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자세하게 이야기 해준다.
"다 끝났어요. 떼기는 금방 뗐는데, 동맥이 터졌어요. 피가 무척 많이 났어요. 지혈이 안되어서, 두바늘 꼬맸어요. 다음 주에 실밥 풀어야 하니까 한번 더 오세요. 오늘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혹시 한밤중에라도 아래로 피가 터져 나오면, 가까운 응급실에 가세요."
+
아마 오래된 흉터라서 살 속으로 깊이깊이 뿌리를 내렸나 싶다. 혈관에도 들어갔나보다. 수술대에 깔은 시트지를 말아서 버린 걸 보니 피가 정말로 흥건하다. 간단히 혹 떼러 왔다가, 자칫하면 다시 못걸어나갈 수도 있는 거였다.
"엄마 금방 갔다올께~" 하고 엄마랑 잠시 헤어진 한결이는, 산부인과 로비에서 오늘 벌레먹은 이 치료할 때 잘 참아서 상으로 받은 요괴워치 메달을 갖고 놀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 일 없던 것 처럼 다시 만나, 감사하다. 내 발로 걸어나와서, 감사하다.
병은, 키우지 말자.
그리고
언제든 어디든 내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하는 이에게 자유를 선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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