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잘 만나고 와서
시름시름 앓는다.
눈 왔다고 밖에 나가 열심히 놀고
집에 들어와서 이마가 끓는 것처럼.
앓을 짓을 해서 앓는 거라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또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린다.
앓아봐야 안 나가지,
좀 앓다가 괜찮아지지,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 한다.
+
무엇을 더 얘기하고 싶더라도
바로 그 얘기를 하지 않고 할 수도 없으면
애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평온한 상태가 온다.
황정은 소설 <파씨의 입문> '대니 드비토' 유라씨처럼
남고 싶은 건지 남고 싶지 않은 건지, 의식과 경계도
흘러내리고 쓸려다니면서 흩어지길.
무엇이 남았어도 멍멍이 복자마냥 산뜻하게 소멸하길.
+
나는 조금 더 앓고,
내일도 우리 모두 무사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