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이 그렇게 먹고 싶더니 생리가 예정일보다 나흘이나 빨리 왔다.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어째, 이런 기분이 계속이면 곤란한데’ 싶은 기분의 최고점을 찍었을 때 따끈한 물에 샤워하려다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계속 이럴 거면 빨리 시작했으면 했다. 위태로웠다. 다행이다. 살았다.
일단 시작하면 사나흘에 걸쳐 천천히 평소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온다. 임신 3개월쯤의 부피로 부풀어오른 아랫배도 조금씩 가라앉고 바다 밑바닥에서 일렁이던 기분도 수면으로 올라온다.
몰아쳐오는 호르몬의 파도는 막을 수 없지만, 왔을 때 덜 일렁일 수 있는 대략의 행동방침 매뉴얼이 있다. 요 대로 생리 시작 직전 사나흘만 집중해서 잘 버티면 또 어찌 어찌 넘어간다.
생리 직전에는 체중이 2키로 정도 느는데, 몸이 무거워서 누워있는 것 말고 꼼짝하기 싫지만 살살 산책하고, 잘 때 되면 말똥해지지만 애써서 자고, 혼자 어디 처박혀서 은둔하고 싶지만 가족과 친구의 안부를 묻고, 피가 끈적해지도록 단 음식이 하루종일 혀끝에 아른거리지만 대신 철분이 듬뿍 든 음식이랑 과일을 먹고, 툭 치면 와앙 눈물을 쏟으니 유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 읽는다. 차 타고 멀리 갈 일이 있으면 안 가고, 사람이 많은 장소는 피하고, 힘쓸 일은 미룬다. 따끈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산책은 평소에 하던 것이지만 조금 더 집을 나서기가 힘들다. 자는 것도 졸리지 않지만 시간을 보고 눕는다. 몸도 마음도 기운이 떨어질 때, 일정한 생활 리듬에 반 강제로 나를 태우면 크게 앓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한번 한번 다 다르다. 별일없이 넘어가기도 하고, 몸이 무겁기도 하고, 격하게 그립기도 하고, 덕질에 폭 빠지기도 하고, 아주 긴 일기를 쓰기도 한다. 매달 낯선 나를 맞이하고 새로 시작하는 몸이 되는 경험은, 성스러운 의식같기도 하다.
주말에 대청소하면서 몇년동안 쓰던 무형광 소창 면생리대를 고민하다 다 버렸다. 웬만하면 폐경 올 때까지 탐폰을 쓰려고 한다. 유기농 순면 제품(나트라케어 어플리케이터 타입) 쓰는데, 몸에 편안하게 잘 맞다. 밤에 마음 편하게 이리 저리 뒤척이면서 잘 수 있는 것도 좋고, 일상 활동을 하는 것도 몹시 편하고(수영도 할 수 있다), 손빨래하고 삶는 수고도 덜고, 살갗도 쓸리지 않고, 팬티도 바지도 이불도 무사하다. 진작에 썼어야 했다. 벗님들, 탐폰 쓰고 광명 찾으시라.
며칠만 기다리면 쭉 가벼운 7월을 보내겠구나 홧팅.
(...이라며, 시들시들 널부러져서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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