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비틀비틀 걸어나온 온유.
자다 깨서 더 굵고 진한 쌍커풀에다
빛이 눈부셔서 잔뜩 찡그리고
머리카락은 하늘까지 뻗쳐있다.

"엄마 얼른 들어와서 자."
"응 알았어 온유야. 들어가서 자~"

한번 꼬오옥 안았다가 놓아주니
비틀비틀 다시 방에 들어간다.
아빠도 온유따라 자러 들어간다.
온유를 안고 눕는다.

"엄마 옆이 좋은데...
엄마, 공부하고 온대.
...따뜻해."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아빠 팔베개하고 온유가 하는 말.
마지막 말을 듣고 방문을 살그머니 닫아주었다.
엄마가 안아줘도 아빠가 안아줘도
따뜻하다고 잘자는 온유.


온유도 따뜻해.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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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고 생각될 때는 일기를 쓴다.

보답할 것은 마음의 해체와 그 기록물.

그리고 사진.

 

- 차화섭 일기 2014.1.5

 

http://blog.naver.com/goodlifelab/220230784616

 

 

화섭언니 일기를 보고 내가 쓴 일기는 2015. 1. 9.

http://coolcitygirl.tistory.com/27

 

+

 

그리고 오늘. 2016. 1. 20.

전에 쓴 일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뒤져보고 또 쓴다. 내가 벗님들에게 보답할 것도 뼈와 살을 발라내는 마음의 해체와 그 기록물.

 

+

 

우스개 너스레 한마디 없는 이 무겁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길고 긴 기록물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자꾸자꾸 써내고 둥실둥실 가벼워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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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린이집 졸업사진을 마저 고르고.
내일 순회문고를 교환하고.
다음주에 도서관 총회를 하고.
그 다음주에 사서교육원 등록하고.
그 다음주에 속초에서 설 쇠고 나면
그 다음주에 이사다.

기분은 일이 끝나지 않는 것 같은 아득함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자고 일어나면 요일이 지나있다. 느리게 가는지 빠르게 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이사이에 공부하러 가는 공간이동의 날이 있어서 시간이 잘라졌다가 붙었다가 한다. 그러다가 한번에 하나씩 매듭을 지을 순간이 온다.

+

밤에 "엄마 내 옆에 누워야 돼!" "내 옆에! 내 옆에!" 하는 말소리. 아침에 선잠이 깨면 엄마를 찾아서 품을 파고들어 팔베개하고 다시 잠드는 작은 머리통. 누워서 꼭 안고 두둥둥 두들기면 찰싹찰싹 폭신한 작은 엉덩이. 내 목을 끌어안고 쪽 뽀뽀하고 "사랑해" 하는 참새같은 입. 양쪽 팔을 들고 달려들어서 안기는 작은 몸. 아침마다 하늘로 뻗치는 머리. "나 배고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 카레가 제일 맛있어. 카레 먹고 싶어."하는 요청. "잘자-" "잘잤어?" 하는 인사. 씻고 나와서 "엄마 닦아줘!"해서 닦아주면 큰소리로 웃으면서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모습.
날마다 당연한 이런 일상이, 어느날 아침부터 갑자기 없어지겠지. 괜찮다가 갑자기 당황스러울 때, 세상 비극을 다 짊어진 것처럼 참거나 울지 말고, 전화를 해야겠다.

삶은 길고 나는 아직 젊으니,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저당잡힌 것처럼 불행한 얼굴을 하고 살 필요는 없겠다. 아이는 볼모가 아니다. 나는 다른 환경에서 잘 지내고, 아이도 이 환경 안에서 잘 지내기를 빌고, 곁에 있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해주어야지.

+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사랑하고 아껴주고 지지하고 별 것 아닌 일로 많이 웃는, 따뜻한 가족이 되고 싶었다. 아이도 많이 낳고 싶었다.

돌아보면 잠시 잠시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더는 함께 할 수 없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함께라고 할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내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그래서 "다들 그러려니" 하는 건 꽤 좋은 버팀목이었다.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쑥 자랐다. 내가 있는 자리를 내가 살 수 있게 가꾸려고 했고, 그 시간만큼 발 붙이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내내, 마음이 방황했다.

함께라고 할 수 없는 관계도 정말로 그러려니,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어졌다. 아이들은 제법 커서 손이 덜 가고, 도서관 일도 자리잡혀서 인정도 받고 수월해졌다. 이 무렵에, 다 놓는다. 이것도 아이러니다. 한참 힘들 때는 기를 쓰고 애를 쓰다가, 안정이 되고 익숙해지고 수월해질만 하니 놓는다.

아직도 "따뜻한 가족"에 대한 희망이 마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어도 마음을 알아주고 몸을 돌봐주고 서로 존중하는 진심어린 관계 안에 가족의 다른 모습이 있는 걸 본다. 환상은 끝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다. 여기가 아니면 안되도록 나를 잡아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꼭 여기가 아니고 다른 곳이어야 하는 이유도 없다. 거기서부터,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지내기를 마음속으로 부탁한다.

 

 

+

 

"엄마 뭐해?"

"엄마 한결이 졸업사진 고르고 있지. 한결아, 엄마 서울에 공부하러 가고 나서 엄마 보고 싶으면, 지금처럼 전화해.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하고 밤에 자기 전에도 전화해. 알았지?"

"알았어. 근데 아빠가 엄마한테 전화 못하게 하면 어떡해?"

"엄마가 아빠한테 말해놓을게. 한결이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하게 해주라고."

"알았어. 엄마! 근데 나도 내 핸드폰 있으면 좋겠어. 형아들은 다 가지고 있어. 그럼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전화하고, 형아들처럼 게임도 하고, 알람도 맞추고, 그럴텐데."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한결이 핸드폰도 사줘야겠다."

"아빠가 나 형아들만큼 커야지 사준대."

"맞아 맞아. 한결이 좀 커서 중학교 들어가면 사줄게!"

"알았어. 꼭 사줘야 돼."

"응. 한결아 사랑해-"

"엄마 사랑해.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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